본문 바로가기
영화감상평

<우주의 끝>

by omicron2000 2026. 10. 17.
반응형

 우주의 끝은 어디이며,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주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주의 끝이니만큼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살면서 많은 것들을 소유하지만, 죽을 때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끝이라고 부른다.

 주인공은 별안간 시한부 판정을 받아 살 날이 세 달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해줄 말을 생각하다 '걸으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고, 그 말을 따라서 병원을 나서 길을 걷는다. 직장 상사는 너무 바쁜 나머지 공감하는 것도 깜빡해버리고, 사람들은 아르바이트생이 나눠주는 전단지를 받자 마자 버린다. 이웃 엄마들은 주인공이 이사간다는 소식에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아이 학교나 학원 이야기를 한다. 이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타인에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다. 반면 주인공을 제대로 공감해 주는 사람들도 있어서, 한 할머니는 죽을 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며, 한 청년은 주인공이 자살하려는 줄 알고 붙잡으러 뛰어온다. 재미있게도 주인공은 다리를 칠하고 있던 사람이 떨어지려고 매달린 사람인 줄 알고 구하려 뛰어든 것이었는데, 청년은 그런 주인공이 떨어지려는 것으로 오해했고, 정작 칠하던 사람은 살 의지가 충만했던 사람이었다.

 <우주의 끝>은 죽음 앞에서 바라보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영화다. 우주의 끝이라는 SF적이면서도 거창한 제목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는 죽음을 의미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죽으면 더 이상 느낄 수 없으므로, 공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시간적인 의미에서 우주의 끝이다. 주인공의 큰아들이 우주의 끝에 대해 묻자 작은 아들은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다. '바로, 여기'다. 아이가 하는 황당한 말로만 보이지만 여기에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우주의 시간적 끝, 즉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고 했다. 나약한 인간은 언제든지 죽을 수 있음을 항상 상기하라는 뜻이다. 할머니의 말처럼 죽을 때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는데, 언제 죽을지도 알 수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답은 주인공이 만난 사람들이 알려 준다. 전단지를 나누어 주던 아르바이트생처럼, 자살을 말리던 청년처럼, 다리를 칠하던 인부처럼 매 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이다. 주인공이 병원을 나서며 했던 말마따나, 세상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이렇게나 많다.

반응형

'영화감상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혜옹주>  (0) 2026.10.17
<킥복서 더 레전드>  (0) 2026.10.17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0) 2026.10.17
<캐비닛>  (0) 2026.10.17
<점퍼>  (1) 2026.10.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