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유명한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다. 사실 히치콕 감독이 꽤 옛날 사람이라 그 유명세에 비해 그의 영화를 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나 또한 이번에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다. 이 영화에 대해 알고 있었던 점은 새들이 막 사람을 공격한다는 거? 그 외에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에 대해 조사한 게 조금이다.
영화는 한 새를 파는 가게에서 시작한다. 멜라니 다니엘스는 주문한 구관조를 찾으러 갔으나 가게 주인은 배송이 늦는다며 배달해 준다고 말한다. 주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 미치라는 남자가 나타나 법정에서 보았다며 멜라니에게 말을 걸고, 그녀를 점원으로 착각한 척 잉꼬가 있는지 묻는다. 새를 잘 모르던 멜라니는 카나리아를 잉꼬라고 보여 주다 무지가 들통나고, 사실 미치가 그녀를 시험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불쾌해한다. 그러다 카나리아가 탈출하는 사고가 일어나고, 이를 수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치는 사라진다.
멜라니는 법정 이야기도 있고 미치에게 한 방 먹여주겠다는 생각인지 잉꼬를 구해서 그를 찾아가는데, 그가 보데가 베이의 집으로 갔다는 사실을 듣고 그곳에서도 미치의 가족이나 주소 등을 수소문하며 위치를 찾는다. 그녀는 미치의 여동생 캐시에게 잉꼬를 전해준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돌아가는 길에 갈매기에게 공격당하고, 그녀를 발견한 미치를 만난다. 그녀는 상처를 치료하고 얼떨결에 캐시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게 되며, 이 때부터 새들이 이상한 낌새를 보인다. 다음 날 생일 파티에서 새들이 갑자기 아이들을 공격하고, 이 뒤로는 사람들과 함께 보데가 베이를 탈출하는 내용이 주가 된다.
영화의 핵심은 새를 피해 보데가 베이를 탈출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이전의 과정은 대부분 극적인 장면을 위한 빌드업이자 서스펜스 발생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새>라는 제목을 보았을 테니 새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고, 카나리아 탈출 장면부터 불길함을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구관조 배송이 지연된 것도 새들의 이상행동 때문일 지 모른다. 미치와의 갈등 또한 그 자체는 중요치 않고 단지 멜라니가 보데가 베이에 찾아갈 계기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데, 그래서 멜라니가 법정에 왜 갔는지는 중반부에 살짝 암시만 되고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 멜라니가 미치를 골려 준다고 집까지 찾아가 선물을 주는 게 썩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히치콕 감독 식으로 보자면 맥거핀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겠다. 과연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스토리는 어색할지라도) 서스펜스를 최대화하기 위해 치밀하게 짜였다.
다만 그 만듦새에 비해 공포영화로서의 위력은 약한 편이다. 5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이제 와서 무서우면 얼마나 무섭겠는가. 점프 스케어도 아예 없어서 무섭다기보다는 긴장감을 조여 온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래도 장면으로 따지면 무서운 장면 자체는 제법 있다. 굴뚝에서 참새가 떼거지로 튀어나오는 장면, 공중전화 박스에 갈매기가 들이받는 장면은 이 영화를 대표하는 가장 무서운 장면들이다. 사실 점프 스케어 없이 공포감을 조성하는 영화가 현대에도 꽤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새>가 별로 무섭지 않은 이유는 점프 스케어의 부재보다는 전반적인 템포가 느리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러닝타임 2시간은 당시 기준은 물론 현재 기준으로도 긴 편은 아니지만 공포영화로서는 결코 짧지 않기 때문이다. 40분은 지나야 새들이 공격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영화의 템포가 전반적으로 느렸던 당시에는 다들 무서워했을 것이며, 으스스한 분위기 자체는 영화 끝까지 유지된다. 단지 유명해서가 아니라 재밌거나 무서운 영화를 보고 싶은 거라면 추천하지 않고, 공포영화를 보고 싶은데 점프 스케어나 무서운 것에 약하다면 시도해 볼 만하다.
고전 영화지만 새들이 사람을 갑자기 공격한다는 컨셉 자체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원작 소설이 있다.) 특정 한 종이 이상해지는 거라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지만, 새라는 한 강(綱) 단위의 이상행동은 그 규모 면에서도 대처가 불가능하며 원인 또한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한 조류학자가 새들이 공격할 리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데, 영화에서 새들의 행동이 그만큼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만 그런 것치고 등장하는 새의 종류가 많지는 않다. 크게 까마귀, 갈매기, 참새가 있으며 칼새는 언급만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새 중 일부는 필름에 그린 것이지만 실제로 훈련시킨 새들을 이용하기도 했다니 종을 다양화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새의 종류를 제한시키는 것은 훈련의 용이함 회에도 영화를 지나치게 난잡하지 않게 만드는 동시에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탁월한 기능을 한다. 갈매기는 직접적으로 사람을 공격하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까마귀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음산한 분위기를, 참새는 공격보다는 시끄럽게 날아다니면서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물론 까마귀나 참새도 공격을 하나 그 위험성은 낮게 묘사된다. 초등학생들이 한참 도망가는 동안 계속 공격했는데도 고작 한 명이 부상을 입었을 정도. 이렇듯 새들의 확실한 역할 분배는 새가 행동하기 전부터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준다.
사실상 이 영화를 무섭게 만든 일등공신은 새들이 공격하는 이유를 밝히지 않는, 그 미스터리함이다. 원래 미지의 공포가 가장 무서운 법이니 말이다. 그 점에서는 후대의 스티븐 킹의 소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보데가 베이라는 한정된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것도 메인 주의 한 지역을 배경으로 삼는 킹과 유사한데, 히치콕 감독이 공포 영화의 거장인 만큼 스티븐 킹이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니 스티븐 킹의 팬이라면 <새> 또한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소설이 유독 영화화가 잘 풀리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다.
다만 미치와 멜라니 사이에 로맨스 분위기가 생기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미치가 멜라니를 여러 번 구해 주기도 했고 극한 상황 속에서 호감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나, 굳이 로맨스 요소를 넣어야 했나 싶다. 물론 이 영화에서 사랑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암시는 많다. 두 주인공이 만난 계기도 잉꼬(사랑앵무, lovebird)고, 이 잉꼬는 새장을 덮어 놓아서 그런지 영화 끝까지 난동을 피우지 않는 거의 유일한 새다. 한편 미치의 어머니 리디아는 아들에게 소유욕을 가지고 집착해 연인이 생기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느낌은 오지만 영화에 조예가 부족한 내게는 무슨 의미인지 도저히 읽히지 않는다. 히치콕 감독의 작품을 더 봐야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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