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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타

「식객」- 허영만

by omicron2000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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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 한 입마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 하나

 

식객 세트

작품 기획에서부터 장장 11년! 진수 성찬의 식객 여행, 그 감동의 피날레!300만 한국 독자들에게 세계 속 한국 음식의 자긍심을 선사한 대한민국 만화의 대명사!11년간 대한민국 맛의 지도를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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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만 작가는 「날아라 슈퍼보드」, 「타짜」, 「각시탈」 등을 그린, 명실상부히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이다. 그런 그의 대표작을 단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다름아닌 「식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식객」이 11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연재되었기 때문도 아니고, 27권에 달하는 분량이 압도적이기 때문도 아니다. 「식객」은 차장수 성찬과 기자 진수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지의 음식을 접하고 요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바로 이 때문에 「식객」이 그의 대표작인 것이다. 전국의 수많은 향토 요리를 다루기에 독자들은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며 만화에 공감할 수 있고, 남의 고향을 다루는 일인 만큼 저자의 사전 조사도 조심스럽고 철저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 「식객」의 진짜 가치이다.

 현재는 방송의 영향으로 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나 「식객」이 연재되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음식에 관련된 자료를 찾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저자는 주장의 신빙성에 관련해 논란이 많은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에게 자문했는데, 대다수 한식의 원류가 일본이라고 주장하는 황교익과는 정반대로 민족주의적 색채가 굉장히 강하게 묻어난다. 저자가 과거에 「각시탈」을 그렸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황교익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식객」에 나오는 요리의 정확한 묘사는 자료 수집보다는 현장 조사의 공헌이 큰데, 어쩌면 그 때문에 황교익의 영향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조사가 철저하다고는 하지만 곳곳에 오류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MSG의 유해성이나 한국이 물 부족 국가라는 발언이 있으나, 당시에는 MSG가 유해하다고 여기는 풍조가 있었고 공공기관에서도 한국이 물 부족 국가라고 주장하던 시기였다. 「식객」이 20년은 된 작품임을 감안해야 한다. 음식에 관해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이는 저자가 교차검증 없이 한 업체만을 취재해 그대로 적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성찬이 술잔을 항상 가득 채우라며 일본식 주도를 요구하면서도 상인이 일본식 표현을 쓰는 것은 비난하는 등 이랬다저랬다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모습을 성찬이라는 인물 하나에 집어넣다 보니 생긴 오류로 보인다.

 「식객」이 음식과 관련한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음식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핵심이 된다. 주인공 성찬의 이야기일 때도, 성찬이 만난 사람의 이야기일 때도, 가끔은 성찬이 등장조차 하지 않는 이야기일 때도 있지만 대다수가 현실에서 누군가 겪어본 일이라는 것도 특징이다.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주로 식당 주인이나 농,어민)의 이야기를 적당히 각색해서 넣은 것도 있고, 히말라야 에피소드의 경우에는 저자가 직접 히말라야를 오른 경험에 기반해 그렸다. 후반으로 가면 이런 이야기의 비중이 줄고 음식의 정보를 줄줄 읊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그 때문에 「식객」의 가장 감동적인 에피소드는 대개 전반부에 위치하는 편이다.

 「식객」이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본질은 음식 만화이고, 음식 만화에는 절대 빼먹을 수 없는 요소가 있다. 바로 요리사들 사이의 실력을 겨루는 요리 대결이다. 성찬은 요리사가 아니라 차장수라서 요리사들이 등장하는 일본의 음식 만화들처럼 요리 대결을 일삼는 것은 아니지만, 라이벌 봉주 덕에 권당 한두 번은 꼭 요리 대결을 한다. 음식이 주는 감동을 테마로 하는 「식객」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어도 이런 에피소드가 중간중간에 있어야 분위기를 적당히 끌어올리고 환기시켜 준다. 성찬과 봉주의 스승 자운 선생이 '음식은 싸우라고 있는 게 아니라 먹으라고 있는 것이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어 「식객」의 최소한의 테마도 지켜진다.

 「식객」이 아무리 음식에 대한 보편적인 추억을 다룬다고 해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앞의 MSG나 물 부족 국가에 대한 것도 그렇고, 성찬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총각네 야채가게'로 유명한 이영석인데 당시에는 그가 자수성가한 청년 이미지가 강했지만 갑질 논란 이후의 지금은 이미지에 괴리감이 있다. 식당에 허락 없이 노숙자들을 풀어 난장판을 만든다거나, 아파트에서 밤늦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한 냄비에 여러 명의 숟가락을 넣는 것이 비위생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전통이라면서 강요하는 점(심지어 전통도 아니다!)도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불편한 장면이다. 등장인물의 언행이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으니 이런 문제의 장면들을 볼 땐 저자의 주장이 아니라 '20년 전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좋은 책은 맞지만 저자의 나이도 있고, 책이 '낡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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