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들이 다 죽는 이야기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소설가인 소설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 소설가 캐릭터가 묘사가 쉽고 겉멋 들기 쉽다는 이유도 있지만, 등장인물은 작가를 어느 정도 투영하기 마련인데 직업마저 소설가 그대로 갖다붙이는 것은 무성의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무조건 싫다는 건 아니지만, 이 경우에는 불호에 가깝다. 화자의 이름은 저자의 이름에서 점 하나만 옮긴 '정원'으로, 저자와 같은 제목의 소설을 써서 같은 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정도를 넘어서 그대로 화자의 자리에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이야기는 소설이 잘 써지지 않던 정원이 퀴어 격투기 선수 조성을 만나 교류하며 시작한다. 조성이 극우 일베 용어를 사용하는 반칙왕(이런 소설이 늘 그렇듯 당연히도 20대 남자다)과 시합을 하다 부상을 입는 일이 생기는데, 사실 대상을 사라지게 만드는 능력이 있던 조성은 다음 경기에서 반칙왕을 없애버리고, 둘은 세상에서 지워 버릴 놈들을 없애버리려 명단을 작성한다는 내용이다.
아주 편리하게 쓰인 글이다. 조성은 작가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긍정적인 요소를 한 명에 압축한 캐릭터다. 격투기를 하는 강인하고 건장한 사람이지만 여타 유명 격투기 선수와 다르게 혐오에 휩쓸리지 않고 다른 남자들을 경멸하는 퀴어다. 책도 많이 읽는 지적인 인물인데다 정원에게 사인도 요청하는 팬이다(이건 좀 웃겼다). 심지어 초능력까지 있고 윤리적 딜레마도 없다. 본인의 복제이니만큼 정원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면은 나오지 않는다. 타인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장면은 있지만, 답을 정해놓고 고뇌하는 '척'만 한다. 반면 반칙왕이나 박 사장은 남자고, 우파고, 죽어 마땅한 평면적인 나쁜 놈이다.
소설의 주제도 표면적으로 드러나 간단하게 읽힌다. 마음같아서는 전염병이든 뭐든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은데, 나한테는 초능력이 없으니까 그렇게 할 수 없으니 그냥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살겠다. 그래서 펀치 드렁크다. 사실 SNS에서 이런 말 하는 사람이 드물지도 않다. 여기에서 굳이 '혐오자를 미워하는 것도 혐오인가' 같은 진부한 혐오 담론을 꺼낼 필요도 없다. 이미 정원이 그런 고민 안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이 책을 읽고 선악의 모호함이나 인간의 입체성을 떠올린다면 잘못 읽은 거다. 이 책은 타인을 이해하지 않고 있는 힘껏 평면적이고 단편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SNS나 일기에 가까운 글이다. 솔직한 게 글의 장점이라면 장점일 수도 있겠다.
'문학 > 순수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짜와 진짜」 - 김승옥 (0) | 2026.07.22 |
|---|---|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0) | 2025.09.26 |
| 「카페에서 만난 세계주의자」 - 오 헨리 (0) | 2025.03.15 |
| 「A Long Walk to Water」 - Linda Sue Park (0) | 2024.08.07 |
| 「기차의 꿈」 - 데니스 존슨 (0) | 2024.05.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