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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신화

「에다 이야기」- 스노리 스툴루손

by omicron2000 2021.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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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신 브라기가 말하노니, 스칼드여, 시를 쓸 때는 이렇게 하시게나.

 
에다 이야기(을유세계문학전집 66)(양장본 HardCover)
스노리 스툴루손의 게르만 신화집 『에다 이야기』. 그리스 신화와 더불어 유럽 양대 신화를 이루는 게르만 신화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돌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등 수많은 대작의 기원이 된 게르만 신화의 원전으로 저자가 음유 시인들에게 시를 짓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집필한 《산문 에다》의 가운데 게르만 신화와 관련 있는 1, 2부를 엮어냈다. 어느 옛날 스웨덴 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현명한 귈피 왕은 아스족 사람들의 막강함의 근원을 알아보고자 아스가르드로 여행을 떠난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도록 노인의 모습으로 변장한 그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진 아스족 사람들에게 현혹당해 지붕이 황금 방패로 뒤덮인 웅장한 성으로 초대된다. 하르(높으신 분), 야픈하르(똑같이 높으신 분), 트리티(셋째 분)라는 세 왕을 만난 그는 여러 질문을 쏟아 내고 세 왕은 그에게 세상의 창조와 해와 달의 기원, 신과 거인, 천상과 세계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저자
스노리 스툴루손
출판
을유문화사
출판일
2013.10.30

 북유럽 신화의 오딘, 토르, 로키 등 신들과 이들이 사용하는 도구 궁니르, 묠니르 등은 신화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보통은 마블 코믹스의 '토르'를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게임이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북유럽 신화의 개념들이 더 익숙할 텐데, <스타크래프트 2>처럼 그 이름만 차용한 경우도 있지만 <갓 오브 워>처럼 북유럽 신화 그 자체를 소재로 삼은 작품도 많기 때문이다. 북유럽 신화에 대한 재창작은 현대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라서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뵐숭 사가를 변형한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작곡한 적도 있다. 이렇게 북유럽 신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큰 작품을 꼽자면 다름 아닌 「반지의 제왕」이다. 주요 인물인 간달프부터가 에다에 나오는 난쟁이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을뿐더러 「호빗」에 나오는 난쟁이 열세 가신의 이름 또한 에다에서 참조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간달프의 이미지를 오딘에서 차용한 등 작품의 전체적인 설정이 북유럽 신화에 기반하는데, 「반지의 제왕」이 현대 판타지 문학 전체에 미친 영향을 따져 본다면, 판타지라는 장르 자체가 북유럽 신화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북유럽 신화가 현대까지 남아 다양한 작품에 영감을 줄 수 있었던 데에는 스노리 스툴루손의 공이 크다. 아이슬란드의 문인이자 정치인이었던 그는 민족 자긍심 고취를 목적으로 조상들이 믿던 신화를 모아 책으로 펴냈고, 그 책이 바로 「에다」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에다」는 「시 에다」(혹은 고古 에다)와 「산문 에다」(혹은 신新 에다)로 나누어지는데 그중 산문 에다를 펴낸 사람이 스노리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경우 그리스인들이 연극에 열광했기 때문에 희곡이나 서사시의 형태로 여럿 보존되어 있으나, 북유럽 신화를 믿던 바이킹들은 그다지 많은 기록을 남긴 민족이 아니었고, 따라서 북유럽 신화에 대해 남은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후술하겠지만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북유럽 신화 자체에 변형이 생겨 바이킹의 전통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 예시로 바이킹들은 나무로 망치 모양을 조각해 부적처럼 갖고 다니는 풍습이 있었는데 점차 십자가와 동일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노리마저 없었으면 북유럽 신화 자체가 거의 잊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앞에서 말한 북유럽 신화의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스노리가 현대 문화에 끼친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에다 이야기」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북유럽 신화의 기원과 전체적인 흐름을 스노리 본인의 해석을 곁들여서 설명하는데, 놀랍게도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트로이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본격적인 신화는 그 다음 장인 귈피의 홀림에서 시작한다. 이 부분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귈피라는 왕이 강글레리라는 가명으로 아스가르드를 찾아가 세 명의 신들에게 세계의 역사와 신들에 대해 묻는 내용이다. 보통 북유럽 신화하면 떠올리는 내용인 세계수 이그드라실과 아홉 세계, 라그나로크, 신들의 관계, 엘프와 드워프 등이 이 부분에서 설명된다. 그다음 장은 에기르가 신들을 모아 연회를 벌이며 시의 신 브라기와 시에 대해 대화하는 내용으로, 스칼드의 시 작성법이라고 불린다. 여기에서 브라기는 상세한 예시를 통해 비유와 운율 등 스칼드(바이킹의 음유시인)들이 시를 쓰는 법을 가르쳐 준다.

 단순히 신화로만 보아도 흥미롭지만, 「에다 이야기」에는 크고 중요한 특징이 둘 있다. 첫째는 시를 소재로 했다는 것이고, 둘째로 저자가 기독교도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언뜻 보기엔 큰 관련이 없는 듯하나 사실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에다 이야기」는 분량의 절반 이상을 스칼드들이 시를 쓰는 법에 할애한다. 특히나 케닝(kenning)이라는, 북유럽 특유의 비유법에 대해 장황한 예시를 든다. 케닝이란 대상을 설명할 때 다양한 이름(혹은 별명)을 드는 것으로, 토르를 '아사토르(에시르 신 토르)', 튀르를 '교수형을 당했던 튀르'라고 달리 부르는 식이다. 스노리 본인의 시를 첨부하면서까지 「에다 이야기」는 시 작성법을 중요하게 다루는데, 이는 민족의 전통을 지키고자 했던 스노리가 젊은 스칼드들을 가르치는, 일종의 교습서로서 이 책을 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저자의 종교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 당시는 북유럽에 빠르게 기독교가 퍼지던 중인데다 저자 또한 기독교도였는데,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 때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이단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바이킹의 전통과 기독교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던 스노리는 중간에서 트로이라는 타협점을 찾는다. 에시르 신들이 트로이의 후손이라는 과감한 재해석을 한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신이 아닌 인간의 경지로 끌어내려 이단 논란을 회피함과 동시에 트로이라는 새로운 명예를 부여한 것이다. 트로이가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만 보아도 알 수 있듯 과거엔 로마의 시조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의 후예로 여겨졌고, 이 때문에 유럽인들에게 트로이 자체가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스노리도 여기에 편승해 바이킹들이 섬기던 존재가 신은 아닐지라도 아이네이아스처럼 위대한 영웅들이라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스칼드의 시 작성법 중에는 케닝을 설명하는 중 브라기가 이런 말을 한다.

이러한 전승물이 잊혀서는 안 되고,
이미 주요 스칼드들이 선호한 옛 케닝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으로 간주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도들은 비기독교적인 신들을 믿지 말아야 할 것이니,
이 책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이야기가 진실된 것이라 믿고 이해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시의 신이 시인들에게 비기독교적인 신들을 믿지 말라고 하다니,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본문에서 브라기는 에기르에게 시 쓰는 법을 가르치는 자이고, 스노리 또한 젊은 시인들을 가르치고자 책을 썼기 때문에 「에다 이야기」의 브라기는 스노리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과 그 신화를 부정하는 위의 대사만 보아도 브라기보단 스노리가 하는 말이라고 보는 편이 그럴듯하다. 이렇게 신앙과 전통 사이에서 고민하던 스노리는 결국 신앙을 포기하지 못해 전통의 일부를 희생하였는데, '시 쓰는 전통'만큼은 남겨서 「에다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는 스칼드들이 단지 전통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에다 이야기」를 썼지만 이 책은 더 나아가 북유럽 신화 전반의 기반이 되었고, 덕분에 8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칼드들을 양성하고 있다. 북유럽 신화를 소재로 글을 쓰는 모두가 그의 책을 보고 배운 스칼드들인 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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