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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신화

「샤나메」- 아볼 카셈 피르다우시

by omicron2000 2020.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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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적이 나타나면 내 귀에 대고 울어라. 내가 즉시 일어나 너를 도와줄 테니.”

 
샤나메(아시아 클래식 5)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페르시아 문학의 정수『샤나메』. ‘페르시아어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볼 카셈 피르다우시가 35여 년에 걸쳐 완성한 페르시아 문학의 영원한 고전이자 베스트셀러다. ‘왕의 책’ 또는 ‘왕들의 책’이라는 뜻의 이 책은 창세부터 7세기 이슬람의 침입으로 멸망하기 전까지, 이란의 신화·전통·역사가 담겼다. 아랍의 지배자들이 아랍어와 아랍문화를 강요하는 상황에서도, 피르다우시는 페르시아어로 페르시아의 전설·신화와 역사를 기록했고 이는 페르시아인들의 영원한 자랑이다. 그래서 페르시아인들은 이 작품이 페르시아인들의 심장에 자리 잡았다고 말하며, 피르다우시를 인류 역사상 최고의 대문호로 일컬어지는 괴테와 셰익스피어, 호메로스에 견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저자
아볼 카셈 피르다우시
출판
아시아
출판일
2014.07.07

 수천 년 동안 서아시아 일대를 지배하며 대제국으로 군림한 페르시아에서는 군주를 왕 중의 왕이라는 뜻에서 샤한샤라고 불렀다. 즉, 샤는 왕을 의미한다. 페르시아어로 나메는 책을 뜻하니 「샤나메shahnameh」라 하면 왕들의 책(王書)으로, 페르시아 왕들의 연대기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창세부터 시작해서 이슬람 세력의 정복에 이르기까지 페르시아를 다스렸던 군주들을 등장시키며 역사와 전설을 한 데 모아 놓은 이 책은 역사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나아가 언어학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고대부터 이어진 한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는 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샤나메」는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국가와 민족에 대한 국민의 자부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영웅담이나 신화를 활용하는 경우는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내용을 보면 페르시아의 위대한 영웅들에 대한 찬사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르시아 왕조의 완전무결함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폭군이나 무능한 샤도 종종 등장하며 샤보다는 그의 조력자들이 부각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인물은 펠리바이다. 펠리바는 인명이 아니라 일종의 직책으로, 샤에게 영토를 하사받아 전쟁이 발생할 때 나서서 싸우는 사람을 말한다. 영토를 받았으니 일종의 귀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샤 다음가는 권위를 가지고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직접적으로 조언을 하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펠리바 말고도 점성술사 무비드, 불사조 시무르그, 수많은 현자들이 샤를 도우며 페르시아를 위해 활약하기 때문에 단순히 왕조의 정당성보다는 국가 전체의 결속을 강조하는 데에 가까워 보인다.

 이 점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 초반에 뱀왕 조학을 몰아내는 내용이다. 조학은 젊었을 땐 순수한 청년이었으나 왕이 된 후 악신 아흐리만이 그에게 접근했다. 요리사로 변장한 아흐리만은 처음으로 고기 요리를 만들어서 그에게 바쳤고, 그 답례로 조학은 자신의 양 어깨에 입을 맞추는 것을 허락했으나 입을 맞춘 자리에서는 뱀이 자라나고 만다. 뱀은 어떻게 해서도 없앨 수 없었기에 뱀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그는 사람의 뇌를 먹여야 했다. 악신의 농간으로 평범했던 사람이 사악한 폭군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뒤로 한동안 조학의 폭정이 계속되던 중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한 대장장이가 나선다. 그의 이름은 카와이며, 뱀에게 먹일 제물로 두 아이를 잃은 사람이었다.


저는 카와입니다. 대장장이이며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왔습니다.
정의를 위해 소송을 제기하오니, 그 상대는 폐하입니다.”


 카와는 자신이 두르던 앞치마를 장대에 묶어 깃발을 만들었고, 그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조학에 맞서 들고일어났다. 이후 영웅 페리둔이 나서서 조학을 처치하고 페르시아에 평화를 가져다 준다. 카와가 직접 조학을 몰아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앞치마는 「샤나메」의 후반부까지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될 정도로 그의 위상은 높다. 폭정에 맞서 페르시아인들을 하나로 모은 영웅이라는 점에서 카와의 정신은 「샤나메」의 핵심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항상 영웅들의 위대한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샤이자 영웅이라도 할지라도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하고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며, 이는 작중에서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가족끼리 칼을 겨누고 싸워야 할 때도 있었고, 조용히 살던 고귀한 인물을 죽여야만 한,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페르시아가 대제국이었던 만큼 아프가니스탄 지역이나 멀리는 중국까지 언급이 되는데, 그런 이웃나라와 전쟁을 벌인 것도 그 예시 중 하나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어떤 명분을 가지고 시작했든 군인들과 국민들의 희생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따라서 일단 시작되면 가급적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샤나메」에서는 샤의 복수심과 상대를 정복하겠다는 집념 때문에 현실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고, 이는 최후반부의 커다란 전쟁과 그로 말미암은 영웅의 죽음이라는 큰 비극을 낳는다.

 페르시아 신화는 인근 중동 지역은 물론 전 세계에 큰 문화적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런 영향력에 비해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데, 「샤나메」를 읽어 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신화와 비교해 보아도 그 역사성과 웅장함이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영웅담과 비극이 반복되며 신화를 풍부하게 하고 인물에게 입체성을 부여하는 점이 특징이며, 등장하는 지명이나 직책명 등을 통해서 당대의 문화적인 요소를 파악하고 페르시아의 지리적 특징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사료로서도 가치가 있다. 조로아스터교가 페르시아 신화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생각해본다면, 폭군이나 암군의 등장 후 영웅이 활약하는 등 선이 악을 무찌르는 구도가 자주 사용되지만 악 또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서 암약해 다시 전쟁을 일으키는 등, 선악의 대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배우고,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피르다우시 또한 샤가 조학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 혹시나 조학이 다시금 군림할 경우 카와를 본받아 악에 맞서라는 의미에서 서사시 「샤나메」를 쓴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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