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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기타

「참 괜찮은 죽음」- 헨리 마시

by omicron2000 2022.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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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자신이 만난 환자만큼의 고뇌를 겪는다.

 

참 괜찮은 죽음

마지막 순간, “멋진 삶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도록『참 괜찮은 죽음』은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신경외과 의사’로 명성이 높은 헨리 마시의 저서로, 삶과 죽음에 대한 색다른 고백을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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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헨리 마시는 신경외과 의사다. 다른 의사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외과 의사, 그 중에서도 신경외과 의사에게 수술은 대단히 중대한 사항이다. 뇌라는 섬세한 조직에 있는 작은 종양을 제거해야 하는데, 수술바늘이 약간이라도 엇나가거나 흔들리면 환자의 뇌를 영구히 손상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저자는 상당히 까칠한 성격을 보인다. 실수가 큰 사고로 번질 수 있으니 매사에 예민하게 구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훌륭한 의사라고 하면 떠올리는, 숭고하고 인자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다만 의사답게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진짜라서 화를 내거나 성질을 부릴 때도 주로 환자가 아닌, 다른 의사나 병원 측을 대상으로 한다. 사실 그가 화를 내는 경우도 전후 사정을 따져 보면 화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때가 많으니, 본성은 따뜻하지만 직업 특성 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런 저자의 까칠한 성격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상황은 주로 말이 통하지 않는 병원 운영진을 상대할 때다. 주기적으로 암호를 변경하라는 방침 때문에 암호를 기억하지 못해 한참동안 동료나 직원들에게 물어 가면서 찾는다거나, 병원 측에서 합의 없이 신경외과 휴게실을 공개해 다른 의사들이 갑자기 이용하게 되었을 때, 그는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다. 사실 주기적 암호 변경은 정당한 방침이고 (의사들과의 논의가 없었던 것은 잘못이지만) 병원의 시설도 운영진의 권한 하에 있기에 병원이 마냥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현장을 이해하지 못해 의사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갈등의 원인인 듯하다.

 저자는 젊은 의사들에게도 까칠하게 굴곤 한다. 경험이 부족한 의사들이 조심성 없게 행동할 때가 있어서 그렇기도 하나, 어느 정도 본인의 트라우마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완벽하게만 보이는 그도 젊은 시절에 본인의 실수로 환자를 죽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소련 붕괴 후 의료 교류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간 적이 있었는데, 현지의 의료 기술이 열악해 수술하지 못하고 있던 아이를 치료하려다 실패한 적도 있다. 결과는 실패해 아이는 목숨을 잃었고, 그의 우크라이나에서의 경험은 다큐멘터리 영화 <영국인 외과 의사The English Surgeon>로도 나온 바 있다. 결국 후배 의사들에게 화를 내는 것은 자신처럼 실수로 환자를 죽이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함인 셈이다.

 저자 자신도 본문 중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훌륭한 의사를 만드는 것은 많은 경험이다. 언뜻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큰 딜레마를 안고 오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희귀한 증세를 가진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고 하자. 경험이 부족한 의사는 수술에 실패할 위험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련한 의사가 이 수술을 맡는다면 비슷한 환자에 대해 이 노련한 의사가 계속 맡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이 의사가 은퇴라도 한다면 숙련도가 낮은 의사들만 남게 되고, 결국 미숙한 의사가 다음 환자를 맡아야 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수술에는 초보 의사들을 보내도 부담이 덜하지만, 아무리 경미한 부상이라도 초보 의사에게 수술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러니 어떤 의사가 수술할 지 정하는 것도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수많은 수술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은 베테랑이기에 누구보다 많은 상황에 대처가 가능하지만, 유능한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기에 가급적 젊은 의사들에게 기회를 양보하려 한다. 후배 의사들에게 까칠하게 대하는 것도 그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많은 경험을 하게 될 테니, 자신이 확실히 교육시키려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Do No Harm」으로, 이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알려진 (실제 선서 구절은 아니다) 표현이다. 한국어로는 보통 '해치지 마라', '나는 사람을 해치지 않겠다' 등으로 번역된다. 영미권에서는 그야말로 의사의 상징과도 같은 표현인데, 가망이 없는 수술은 가차없이 포기하지만 조금이라도 살 가망이 보인다면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그에게 정말로 걸맞은 제목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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