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듯 자석에 끌어당겨진 과학자
누구나 어릴 때 가지고 놀아 보았을 법한 자석은 같은 극끼리는 밀어내고 다른 극끼리는 당기는 성질이 있으며, 극에 상관없이 쇠붙이를 끌어당길 수 있다. 이 특성 덕분에 스피커, 모터, MRI 등 우리 주변의 다양한 기기에서도 자석이 이용되며, 지구 또한 하나의 자석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수천 년 전부터 나침반을 만들어 이용하곤 했다. 하지만 이처럼 긴 역사에 비해 자기력의 기본적인 원리가 밝혀진 것은 100년 정도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는 자기력이 근본적으로 원자 내의 전자가 가지는 스핀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원자모형이 정립되고 난 뒤부터 본격적인 연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20세기의 자석 연구와 한평생 함께해 온 사람으로,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높은 출력을 낼 수 있는 전자석이 있다. 비터 전자석이라고 불리는 이 장치는 강력한 자기장으로 반자성을 발생시켜 개구리를 공중에 띄우는 데에도 성공한 바 있다. 그는 무려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의 강의를 듣고, 밀리컨과 함께 연구를 하기도 했는데,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이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간 위대한 과학자이다.
「자석 이야기」는 일단은 과학교양서의 형식을 가지고 자석의 원리나 용례를 설명하긴 하지만, 자전적인 성격이 상당히 짙다. 자석에 대해서 처음부터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짚으면서 자신이 당시 연구한 분야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웨스팅하우스에서의 전자석 개발 과정이라거나, 제2차 세계대전 중 함대가 기뢰에 탐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 소거를 연구한 일 등이다. 비터 전자석이나 자기 소거가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기에 다소 어려운 감은 있지만, 전자의 스핀 개념을 알고 있을 정도로 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문제 없을 것이다. 다만 읽는 데 한 가지 어려움이 있다면 내용보다는 번역 쪽이다. 역자인 지창렬 교수는 한국물리학회 창립멤버 중 한 사람이자 전 회장으로서 국내 전자기학 분야의 최고 원로였는데, 1990년에 이 책을 번역한 뒤 2006년에 사망하는 바람에 개정판에서 번역이 수정되지 못했다. 역자가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으니 번역 내용엔 문제가 없지만, 90년도의 번역이 유지되는 바람에 다소 예스럽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N극과 S극을 북극과 남극이라고 부르는 등 지금의 독자가 보기에는 어색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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