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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순수문학

「데미안」- 헤르만 헤세

by omicron2000 202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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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의 시대정신과 그 선지자

 
데미안(세계문학전집 44)
현실에 대결하는 영혼의 발전을 담은 헤르만 헤세의 걸작 『데미안』. 독일 문학의 거장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던 작품으로, 열 살 소년이 스무 살 청년이 되기까지 고독하고 힘든 성장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불안과 좌절에 사로잡힌 청춘의 내면을 다룬 이 작품은 지금까지 수많은 청년세대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목사인 부친과 선교사의 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헤르만 헤세는 회고적이며 서정성이 강한 신낭만주의적 경향의 작가로 출발했으며,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깊이있고 내면적인 사고를 갖게 돼 증오보다 사랑, 전쟁보다 평화가 더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이 작품에는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삶의 궁극적 의미가 담겨 있다. 낮과 밤, 의식과 무의식, 아폴로와 디오니소스, 지성과 관능, 각성과 도취 등 두 가지의 대립적인 세계 속에서 방황하는 싱클레어와 두 세계 중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고 다만 자기 자신에게 속해 있는 데미안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잃어버린 인간의 고뇌, 고독하게 모색하고 지치도록 갈망하는 청춘의 고뇌를 그려보인다.
저자
헤르만 헤세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09.01.20

 「데미안은 일반적으로 화자인 싱클레어에 헤르만 헤세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켜 성장을 다룬 소설로 해석되곤 한다. 수레바퀴 밑에서의 한스, 동방 순례H. H. 등 저자 자신의 분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에선 일반적인 일이다. 데미안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아브락사스라는 상징은 영지주의의 개념인데, 이 책을 집필할 당시 헤세가 영지주의에 심취한 상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그의 내면을 형상화한 인물이라는 해석은 타당하다. 하지만 영지주의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인지 그는 데미안이후 영지주의에 기반을 둔 작품을 쓰지 않고, 싯다르타부터 시작해 동방 순례까지 동양철학과 연관된 작품을 주로 다루게 된다. 이렇게 헤세의 가치관이 계속 변화한 것은 그가 당시 유럽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인데, 바로 이 시대의 가치관, 즉 시대정신의 변화가 데미안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데미안의 핵심적인 요소는 빛과 어둠, 선과 악이다. 어린 시절, 싱클레어에게 있어서 그의 가족과 집은 빛의 세계였으며, 나머지는 어둠의 세계였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는 성장하며 데미안을 통해 세상을 빛과 어둠 둘로 나눌 수 없다는 점을 배운다. 세계라는 알을 뚫고 날아오르는 아브락사스라는 존재를 통해서였다. 이는 데미안이 가르쳐 준 말이지만 싱클레어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이미지이기도 한데, 알을 뚫고 날아오르는 새의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낸 것은 싱클레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단지 새의 이름을 알려 준 것일 뿐, 아브락사스의 개념 자체는 싱클레어의 안에서 우러나왔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싱클레어가 헤세 자신의 분신일뿐만 아니라, 일종의 시대정신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세상을 빛과 어둠 둘로 나누어 받아들였던 싱클레어는 선과 악이 분명하게 나누어진, 기독교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의미한다. 데미안이라는 이름이 악마(demon)를 연상시키고, 그가 카인의 낙인을 긍정하는 것은 이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데미안의 어머니의 이름이 카인의 어머니, 이브의 독일어식 발음인 에바 부인이라는 것도 데미안이 카인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이분법적 가치관에서 벗어난 싱클레어는, 다시 말해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시대정신은 어떻게 되었는가? 작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이어졌고, 데미안1919년에 집필되었으니 헤세는 싱클레어가 다가오는 운명에 맞서는 것으로 마무리지을 수밖에 없었으나, 우리는 역사를 통해 무슨 일이 벌여졌는지 알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기존의 도덕관이 크게 변화를 겪었고, 사람들은 과거의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1920년에 새로 등장한 예술 사조인 다다이즘을 들 수 있다. 전쟁을 목격한 예술가들은 기존의 전통과 질서에 역겨움을 느꼈고, 인류가 그토록 자랑하던 지성이 수백만을 죽였다는 사실에 환멸을 느꼈다. 이들은 과거의 모든 것을 거부하며, 무의미한 단어를 나열하는 것으로 저항감을 드러냈는데,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시대정신은 과거의 가치를 부정하고 스스로 옳다 생각하는 것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다이즘의 그것과 통하는 면이 있다.

 싱클레어는 시대정신이고, 데미안은 새 시대를 알리는 선지자이다. 동양 철학에 심취한 헤세의 이후 행적을 생각해 본다면 그는 불교나 도교에서 새 시대의 길을 찾으려 한 모양이지만, 지금 시대가 그의 생각처럼 흘러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데미안은 기존의 질서가 완전히 무너지고 새 시대가 올 것을 예견했다는 점에서 선지자 데미안의 예언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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