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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 대전 Z」- 맥스 브룩스

by omicron2000 2021.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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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가 창궐한 세계를 살던 사람들의 인터뷰

 

세계 대전 Z

영화 [월드 워 Z] 원작 소설. 가상의 전염병이 불러온 대재난을 인터뷰 방식으로 풀어낸 소설. 다큐멘터리와 SF 스릴러를 결합한 좀비 장르이면서도 재난에 대처하는 인류의 생존 보고서 형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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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대전 Z」는 내용만으로 보면 전형적인 좀비 소설이지만, 일반적인 좀비물이 인류가 존폐의 위기에 처한 상황을 다루는 것과 달리 위기가 거의 지나가고 문명이 재건되는 시점을 다룬다는 특징이 있다. 그 원인은 이 작품이 생존기나 모험담이 아닌,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좀비와의 전쟁이 끝나고 수년 뒤, 각국의 구체적인 상황과 대응책 등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주인공이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는데, 이 때문에 작품이 다루는 배경이 넓고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국가는 물론, 이스라엘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비중 있게 등장하고, 심지어 한국도 언급이 될 정도이니 말이다. 다만 각국에 대한 묘사는 정밀한 조사를 했다기보다는 단순히 해당 국가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따왔다는 느낌이 강하다. 일본에서는 맹인 검객이 일본도를 쓰는 제자와 함께 좀비를 무찌르는 단체를 설립했다거나, 러시아에서는 무자비하고 억압적인 정책을 펼쳐 억지로 확산을 막았다는 식이다. 좀비 사태가 발발하자마자 북한 국민이 모두 사라져 한국에서는 휴전선 근처의 병력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도 하는데, 한국에 대한 묘사는 오히려 정확한 편이다.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이 작품의 최대 특징이자 강점이지만 사실적인 것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할 수도 있다.

 다만 저자가 좀비물의 팬인 만큼 좀비에 대한 설정도 세세한 것까지, 어찌 보면 쓸데없을 정도까지 자세하게 되어 있고, 좀비 바이러스가 처음 퍼지고 난 다음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서는 인상적인 부분이 많다. 한 사기꾼이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책이라면서 약을 팔았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겁이 없어져 확산이 빨라졌으며, 이 약이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자 대규모의 공황상태가 발생하는 것 등은 이후의 묘사에 비하면 훨씬 그럴듯하게 들린다. 물론 여기에 억지스러운 요소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좀비라는 장르 자체가 원래 비현실적이기에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뒤로 가면 갈수록 무리수적인 전개가 늘어난다. 미군이 좀비를 잡기 위해 첨단 병기를 동원했지만 대패하고, 현대식 병기를 사용하기보다는 전 세계적으로 냉병기를 사용해 좀비에 맞서는 추세가 된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총기가 금지된 나라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발생해도 경찰서나 군부대에서 총을 챙겨 싸우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테지만, 일본도나 중세 시대에 사용하던 클레이모어를 꺼내 쓴다는 것은 설득력이 지나치게 떨어진다. 총을 구하기 어려우니 삽이나 소방 도끼를 쓴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도, 경우에 따라선 둔기보다 못한 도검류를 특별한 훈련도 받지 않은 사람이 무기로 쓴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냉병기를 쓸 당위성을 만들기 위해 현대식 군대가 패배하는 내용을 무리하게 넣어서 작품의 전체적인 핍진성이 훼손된 것이다.

 이렇게나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세계 대전 Z」는 충분히 읽을 만한 책이다. 인터뷰 형식이라는 신선함에 더해 단순히 장르적인 재미가 있가 때문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전파되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보다는 일본도를 들고 좀비를 베는 장면, 좀비를 막기 위한 영웅적인 희생 등 단편적인 장면을 전달하려는 느낌이 강하다. 반대로 각국의 대응을 정말 '현실적으로' 나타냈다면 좀비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은 둘째 치고, 무미건조하게 격리와 사살만 반복되다가 끝이 났을 것이다. 그러니 단지 좀비 장르를 즐기기 위해서라면 저자가 쓴 내용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좀비라는 장르 자체가 비현실적인 상황을 상정하고 읽는 장르라는 점을 감안해도 최소한의 개연성은 보장되어야 하건만, 그조차도 잘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건물 하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R.E.C>처럼 다른 좀비물의 경우 현실성을 위해 장소를 제한시켜 놓는 경우가 많은데, 「세계 대전 Z」의 경우에는 배경이 전세계로 확장되다 보니 문제가 두드러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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