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포스트 아포칼립스

「메트로 2034」- 드미트리 글루홉스키

by omicron2000 2020. 10. 27.
728x90

멸망한 세계의 지하에서 낭만을 찾는 자들

 
METRO 2034(메트로 2034)(제우미디어 게임 원작 시리즈)
폐허로 변해버린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 『메트로 2034』. <메트로 2033>의 후속작으로, 출간 6개월 만에 30만부 이상 판매되며 러시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하나의 도시이자 국가가 된 모스크바 지하철역들. 모스크바를 덮친 미사일 폭격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메트로에서 살아간다. 지구표면은 방사능에 오염되었고, 생존자들은 오직 지하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도시국가가 된 세바스토폴역에서 주민들은 생존과 방어를 위해 사투를 벌인다. 그러던 어느 날 세바스토폴역이 광대한 메트로에서 떨어져 고립되면서 주민들은 죽음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저자
드미트리 글루코프스키
출판
제우미디어
출판일
2011.04.29

 「메트로 2033」에서 1년이 지났다. 2033년 아르티옴의 여정이 메트로의 북쪽 끝에서 시작해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해서 싸우는 내용이었다면, 2034년의 여정은 그 반대로 메트로의 남쪽 끝에서 시작해 메트로 내부의 위협인 전염병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거기에 더해 아르티옴의 동반자들이 모두 죽고 홀로 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과는 다르게 「메트로 2034」에서는 헌터, 호메로스, 사샤, 레오니드까지 여러 인물의 행적을 교차로 보여준다. 이렇듯 다방면에서 「메트로 2033」과 「메트로 2034」는 대비되는 부분이 많고, 마찬가지로 주제 또한 반대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전작의 주제가 인간성의 상실을 겪고 돌아오는 것이었다면 「메트로 2034」의 주제는 인간성을 간직하고 떠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메트로 2034」에는 전작보다 많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호메로스, 사샤, 헌터, 레오니드까지 모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낭만'이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름부터 모스크바 메트로에 어울리지 않는 호메로스는 글을 쓰고자 하는 꿈이 있다. 폴리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역에서 책이 불쏘시개로 쓰이고 마는데,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간을 보내는 그는 그리스의 위대한 시인의 이름을 따서 스스로를 부를 정도로 이야기에 집착한다. 그는 메트로 시리즈에서 보기 드문 노인으로, 전쟁 이전의 삶을 기억하기 때문에 낭만이 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영웅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썼듯, 메트로의 호메로스는 마찬가지로 영웅 서사시를 쓰기 위해 헌터를 따라간다.

 사샤는 호메로스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호메로스가 늙은 남성이고 과거를 알기에 낭만에 빠져있다면, 사샤는 젊은 여성이고 과거를 모르기 때문에 낭만에 빠진다. 아버지가 지상에서 가져온 잡동사니에 있던 삽화가 그녀가 아는 과거의 모든 것이며,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이라는 말만을 듣고 비가 오는 모습을 보기를 소망한다. 오히려 과거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끝없는 아름다움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헌터가 감정 없는 괴물이 아니라 믿어 그와 동행한다.

 레오니드는 메트로에서 가장 거대한 집단이자 공산주의자 단체인 붉은 라인의 최고지도자의 아들이지만, 그 자리를 거부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즐긴다. 메트로라는 환경이 음악과 같은 문화 활동에도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면 붉은 라인의 적대 세력에게 위협받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자유롭게 사는 그의 모습은 「메트로 2034」에서, 아니 메트로 시리즈 전반에서 가장 낭만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는 사샤에게 반해서 동행하고, 그녀의 관심을 끌고 함께 있고자 한다.

 전작에도 등장한 헌터는 무뚝뚝하고 감정을 도무지 드러내지 않아 낭만과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는데, 인간성을 유지하려 하는 모습을 보이고, 호메로스와 사샤 모두 그와 관련된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낭만' 그 자체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결말을 보면 그 또한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맞이하고, 죽은 것으로 보이는 사샤와 레오니드를 기억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앞에서 말했듯 「메트로 2034」의 주제는 인간성을 간직하고 떠나가는 것이다. 결말에서 전염병이 퍼진 역이 폭파되어 지하수가 쏟아지는데, 사샤는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비를 볼 수 있었고, 레오니드는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하며 사랑하는 사샤의 곁에서 죽을 수 있었다. (사샤가 죽었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살아남은 두 사람을 보면 헌터는 자신을 잡아줄 사샤를 잃었고, 호메로스 또한 소설의 여주인공을 잃어 둘 모두 자신의 낭만을 잃어버렸다. 네 주인공 중 둘이 죽고 둘은 꿈을 잃어 배드 엔딩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메트로 2033」보다는 희망적인 결말이기도 하다. 적어도 둘은 자신의 꿈을 이루며 행복하게 떠나갔고, 헌터는 그들의 죽음을 계기로 인간성을 되찾았으며, 호메로스는 새로운 영웅을 찾으러 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메트로 2033」에서 파괴된 세계의 비참함과 인간 군상을 보여주었다면, 「메트로 2034」에서는 등장인물을 대폭 줄인 대신 주인공을 늘려 희망을 지닌 몇몇 사람들을 조명한다. 일관적인 스토리와 웅장한 분위기를 가진 전작과 비교해 살짝 호불호가 갈릴 만한 작품이기는 하나 앞에서 말했듯 두 작품은 반대되는 성향이 짙기 때문에 함께 읽어야 그 문학적 가치가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성이 어떻게 상실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회복되는지 말이다. 다만 후속작인 「메트로 2035」는 앞의 두 작품과는 전혀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고, 더 직접적으로 현 정부를 비판하는 작품이라 이 해석을 「메트로 2035」까지 이어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메트로 2033」과 「메트로 2034」만이 가지는 연관성인 셈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