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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음식

「중국에 차 마시러 가자」- 박홍관

by omicron2000 2021.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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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남쪽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

 

중국에 차 마시러 가자

테마별로 보는 인문학 여행, 그 열네 번째 이야기! 구름의 남쪽, 운남 보이차의 세계!! 중국을 경험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막막한 일이다. 어떤 지식과 시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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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 종류가 넘는 다양한 차 중에서도 보이차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주로 중국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보이차는 최근 건강 관련해서 조명되고 있기도 하고, 한 묶음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으로도 유명한데, 이 보이차의 상당량은 중국의 운남 지역에서 재배가 된다. 운남은 동남아시아와 접한 중국의 남부 변경 지역으로, 삼국지에서 맹획이 다스리는 남만 지역이 바로 이곳을 말한다. 이곳은 동남아시아의 열대 기후, 인접한 티베트의 고산 기후 등 다양한 기후가 공존하기에 그만큼 다양한 차를 기를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차 산업이 발전했다고 한다. 물론 전체적인 수요에 차이가 있는 만큼 녹차를 더 많이 재배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 전체에서 녹차와 보이차의 재배 비율을 고려한다면 운남에서 보이차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차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중국에 차 마시러 가자」는 제목 그대로 그가 운남 지역을 여행하며 차(주로 보이차)에 대한 정보와 자신의 경험을 다루는 일종의 여행기이다.

 지금이야 차는 기호식품이라 담배나 커피처럼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나 즐기는 식품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차가 필수품인 지역도 있었다. 주로 물에 석회가 섞여 있는 등 수질이 좋지 않은 곳에서 차를 많이 소비했다고 한다. 차를 우리기 위해서는 물을 끓인 다음 찻잎을 넣는데, 물을 끓이면서 한 번 소독이 되고, 찻잎이 추가적으로 수질을 정화해 주며, 무기질이나 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우러나오니 전염병 예방과 영양소 보충 면에서도 차는 탁월한 효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운남 지역의 사람들이 차를 많이 재배하는 것도 고산지역이라 물이 좋지 않고 영양소 결핍이 잦기 때문이었다는데, 이는 삼국지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제갈량이 남만 지역을 정벌할 때, 촉나라 병사들이 독이 있는 샘물을 마셔 병에 들자 맹획의 형인 맹절이 자신이 재배하던 '해엽운향'이라는 풀을 주며 해독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이 그것이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내용이라 실제 역사라는 보장은 없지만, 운남 지역의 사람들은 오염된 물이나 풍토병에 식물로 대처하는 법을 알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경우 해엽운향은 차의 일종이며, 당시에도 운남에서는 차를 즐겨 마셨으리라 짐작이 가능하다.

 이렇듯 운남과 차의 역사는 천 년에 달할 정도로 매우 길어서 해당 지역의 사람들과 차의 관계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옛날에는 수질이나 영양분 문제로 차를 마셔야 했다지만 현재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꼭 차를 마실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단순히 차를 좋아한다는 것을 넘어 매일같이 차를 마시고, 매일같이 차나무를 기른다. 차가 곧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일화 중 특히나 인상 깊은 사례를 꼽자면 저자가 만났던 한 차창의 사장이 있다. 그에게 몸이 아프면 무슨 차를 마실지 묻자, 의외로 그는 차를 마시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 반응이 의아한 저자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사장은 평소에도 항상 차를 마시기 때문에 정상이 아닐 때에는 오히려 평소랑 다르게 해야 한다 대답했다. 보통 사람은 평소 차를 마시지 않으니 아플 때 차를 마실 텐데,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차를 마시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할 수 없는 발상이다.

 운남에는 차가 유명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좋은 차가 나오는 것도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기르기 때문이지 차가 저절로 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저자가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만 해도 중국 찻집에 장가 온 미국인 사위 브라이언, 대나무를 잘라 죽통에 차를 우리는 소수민족 사람들, 한족이지만 소수민족 행세를 하는 것이 장사가 잘 된다며 소수민족의 전통의상을 입은 한족 사장 등 흥미로운 인간군상을 엿볼 수 있다. 중국에는 50여 개의 소수민족이 있고, 운남성에는 그중 태족과 하니족을 포함해 무려 25개의 민족이 살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저자의 여행이 더욱 다채롭게 느껴지는 듯하다. 언제나 여행길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 책을 읽고 나니 차에서 나는 냄새는 찻잎의 향기가 아닌, 차를 기르며 울고 웃는 사람들의 향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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