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식만큼이나 즐거운 독서
저자는 뉴욕의 정육점 미트 후크에서 일하던 푸주한(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지만, 원문의 butcher를 그대로 백정이라고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도축업자는 너무 사무적인 표현이라 그런지 책에서는 이렇게 부른다.)이자 한 명의 애독가로서 책과 관련된 요리와 일화를 블로그에 올리곤 하던 사람이다. 전부 과거형인 이유는 2015년에 이미 미트 후크를 나와 창업을 했고, 블로그 활동도 몇 년 전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원서 출판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번역에 반영되지 않은 듯한데, 어쨌거나 이 책은 저자가 블로그에 올리던 글을 토대로, 자신이 유년기-청소년기-성인기에 읽은 인상 깊은 책과 관련된 음식을 다룬다. 항상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을 다루는 것은 아니라서 책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과 음식을 연관 짓는 경우도 있고, 책에서 어떤 음식인지 설명이 부족한 경우 나름대로 어울리는 음식을 고르기도 하고, 그마저도 아니면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소개하기도 한다. 사실 책의 내용보다는 자신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듯하다.
음식이 중심으로 다루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문학 작품에서 음식을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가 회 쳐 먹던 생선이 있다. 서양 문학에서 생선을 날로 먹는 것만 해도 특이한데 산티아고가 맛을 평가하며 유독 맛있게 먹어서 기억에 남는다. 국내 문학 중에서는 「운수 좋은 날」에서 김 첨지가 사간 설렁탕이 있고, 이쪽은 대사 자체가 워낙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수십 편의 문학 작품과 음식을 연관 지어 이야기하는데, 4대째 푸주한을 하고 있다는 직업적 특성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이 숫자는 음식과 책에 대단한 애정을 가진 게 아니라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책의 내용보다는 저자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쓰였기에 독후감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에세이집에 가깝긴 하나, 요리의 레시피가 함께 적혀 있어 저자가 추천하는 책을 읽는 동시에 직접 요리도 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고기를 파는 것이 직업이지만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물성 대체 재료를 제시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다만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가 크게 체감된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리에 쓰이는 재료도 국내에서 구하기 까다로운 경우가 많고, 한국에는 오븐이 없는 집도 많다. 음식이야 오븐만 있다면 대부분 시도해 볼 만하다고 쳐도, 저자가 읽어본 책, 특히 어릴 때 읽은 책 중에는 한국에 번역조차 되지 않은 책이 제법 있다. 뒤로 갈수록 한국 독자들에게도 익숙할 책이 많이 나오지만, 책에 대한 경험을 저자와 공유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분명 좋은 책이지만 국내 출간에 적합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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