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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시

「악의 꽃」-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by omicron2000 202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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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아름답지만 내면엔 악이 도사린 시

 

악의 꽃

현대 예술을 대표하는 두 거장의 만남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 화가 앙리 마티스,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그림을 바치다!국내에서 최초로 출간되는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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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꽃」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유일한 시집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사실 숨겨진 저자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프랑스의 야수파 예술가 앙리 마티스다. 정확히는 마티스가 보들레르의 시를 읽고 깊게 감명받은 나머지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을 뽑아 자신의 삽화와 함께 모아 놓은 것으로, 일종의 시화집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것이다. 보들레르와 마티스는 문학과 미술이라는 전혀 다른 두 분야의 예술가들이지만, 의외로 예술 사조는 상당히 비슷했다. 보들레르의 상징주의가 기존의 틀에 박힌 문학과는 달리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을 추구했다면, 마티스의 야수파는 사실적인 묘사를 거부하고 강렬한 색채와 추상적 묘사를 추구했으니 말이다. 즉 이 둘은 전통에서 벗어나 개인의 주관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던 것이다. 마티스가 「악의 꽃」을 읽고 감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선 저자인 보들레르와 그의 작품인 글 자체에 집중한다면, 수록된 시들은 매우 수려한 문체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그 내용이 아주 자극적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제목인 「악의 꽃」(원제는 Les Fleurs du mal)부터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그 내용은 사악하다는 것이다. 그의 시를 보면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 해도 믿을 만큼 축복이나 천사 등 기독교적인 묘사가 잦은데, 그럼에도 자극적이고 외설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모순적인 측면이 바로 이 '악'이다. 「악의 꽃」은 외설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6편이 삭제되고서야 재출간되었다고 하니 그 수위가 짐작이 될 것이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고양이'의 일부를 예로 들어 보자.

이리 오너라, 예쁜 내 고양이, 사랑에 빠진 내 가슴으로.
그 발톱은 감춰두고
금속과 마노가 어우러진
예쁜 네 두 눈에 잠기게 해 다오.

내 손가락은 한가롭게
네 머리와 탱탱한 등을 쓰다듬고,
나의 손이 기쁨에 취해
짜릿한 네 몸을 만질 때,

(후략)

 분명 시의 제목이기도 한 고양이를 묘사하는 부분이나, 동물을 쓸데없이 관능적으로 묘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뒤에 이어지는 말은 '내 여인을 마음속에 그려본다'로, 사실 이 시는 고양이를 만지며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연인을 떠올리는 시이다. (그녀는 보들레르와 가장 오랫동안 연인 관계였던 아이티계 혼혈 잔 뒤발로, '검은 비너스'라고 불리곤 했다.) 여인을 직접 묘사한 것도 아니고, 단지 고양이에 빗댄 것뿐인데도 이 정도로 감각적인데, 여성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다른 시들은 퇴폐적이다못해 불경스러울 정도이다. 심지어 보들레르는 여러 여성을 만났기에 등장하는 여인도 한둘이 아니며, 이러니 외설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보들레르의 아버지가 환속한 가톨릭 사제였기 때문인지 그는 본래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나 시간이 가며 점차 믿음을 잃었다고 하는데, 종교적 상징과 함께 나오는 감각적인 묘사는 이것이 시로 발현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삽화가이자 제2의 저자인 앙리 마티스에 집중해 보자. 그는 야수파 화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야수파라는 명칭은 강렬한 색감과 거친 표현이 마치 짐승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춤'과 같은 그의 대표작들을 살펴보면 왜 야수파라고 불리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의 삽화는 마티스의 그림이라고 하에는 위화감이 있다. 진한 색상을 자랑하던 그의 대표작과는 달리 아무런 색이 없는 연필 스케치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그는 나이가 들며 손에 점차 힘이 떨어졌지만, 미술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기 때문에 손에 붓을 묶어 그림을 그렸고, 그마저 여의치 않자 연필을 들어 그림을 그린 것이다. (연필조차 들 수 없을 때에는 색종이를 오려 콜라주를 했다.) 그 때문에 「악의 꽃」의 삽화는 전부 물감이 쓰이지 않은 연필 스케치이나, 마티스의 야수다운 거친 선만큼은 남아 알아볼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보들레르는 여러 여성을 사귀었으며, 그들을 자신의 시에 담았다. 따라서 「악의 꽃」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는 여인에 대한 내용이다. 마티스는 이에 맞추어 시마다 여인의 얼굴을 그렸고, 시의 내용 자체가 보들레르의 연인에 대한 찬미이기 때문인지 단순한 선으로 그렸음에도 묘하게 매력이 있다. 보들레르는 마티스가 태어나기 2년 전 사망했기에 삽화를 볼 수 없었고, 마티스 또한 시에 나오는 여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로 그림을 그렸겠지만 보들레르의 시와 마티스의 그림은 놀라울 정도로 조화를 이룬다. 어쩌면 사실적 묘사보다는 주관적인 표현을 중시하는 상징주의와 야수파였기에 궁합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마티스의 「악의 꽃」은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시들을 가려낸 책이 아닌,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경의를 표한 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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