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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시

「수채화로 그린 시 시로 쓴 수채화」- 송승호

by omicron2000 2021.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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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그림에 녹아내린 듯 그림이 시를 담고 있는 듯

 

수채화로 그린 시 시로 쓴 수채화

『수채화로 그린 시 시로 쓴 수채화』는 수채화와 시가 아름답게 조화된 시집으로 이 두 가지를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이 되도록 엮음으로써 시를 읽는 것에는 계속적이고 참신한 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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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이 눈으로 보고 즐겨야 하는 시각의 예술이라면, 시는 노래와 마찬가지로 청각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도 기본적으로 눈으로 읽는 것이며 그 내용에 따라 미각, 후각, 촉각 등 어떤 종류의 심상이라도 담는 것이 가능하지만, 운율이나 각운 등의 요인으로 인해 청각적인 감각을 우선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시를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는 소리 내어 읽을 때 더 깊은 여운이 남는 것도 마찬가지이며, 시가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쓰였을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이렇듯 그림과 시는 시각과 청각이라는,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두 감각을 각각 자극하며, 그 때문인지 둘이 함께 있을 때의 궁합이 상당히 좋다. 앙리 마티스가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삽화를 그려 넣었듯, 시와 그림이 시화로 함께 있을 때 그 여운은 배가 되는 것이다. 「수채화로 그린 시 시로 쓴 수채화」는 저자 본인이 그림과 시 모두를 맡은 시화집으로, 시화의 이런 특성을 잘 반영한다.

 시인 중에서 순수하게 시만 쓰며 시로 먹고사는 사람은 흔치 않다. 대표적으로 김용택 시인만 해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으며, 직업은 아니지만 이해인 시인은 수녀고, 그 밖에도 수많은 시인들이 교수나 소설가 등 다른 직업을 병행한다. 그리고 그 본업은 시인의 시 시계나 작품 성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시인도 화가도 직업이 아니고, 따로 생업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시를 쓰기에 앞서 화가였기 때문인지 예술가로서의 특징이 시에 많이 드러나는 편이다. <가장 행복한 시간>에서는 글 중간에 공백을 크게 두어 글의 윤곽선이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했으며, <우리의 사랑>에서는 아예 글이 하트 모양을 이루도록 하는 식이다. 이런 방식이 완전히 독창적인 시도는 아니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글자를 그림처럼 활용한 시는 상당히 신선했다. ㅁ, O, I, _을 이용해 기차를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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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                        OO

 이렇게 시에 시각적인 구조를 입히는 것은 이상의 시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그의 작품 중에는 글이 특이한 형태로 구성된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숫자를 사각형 모양으로 배열하고 의사의 소견서처럼 만든 <오감도> 시제 4호, 일명 '환자의용태에관한문제'가 대표적 예시이다. 물론 이 책에 담긴 시가 그의 시처럼 난해하거나 심오한 것은 아니지만, 이상은 건축을 공부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저자의 예술가적인 측면과 이상의 건축가적인 측면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 시화를 낼 때에는 시에 맞춰서 그림을 그리고 발표하는데, 「수채화로 그린 시 시로 쓴 수채화」에 들어 있는 그림은 사실 시를 위해서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한다. 기존에 그려 놓았던 작품 중 시에 적당히 어울린다 싶은 것을 골라서 넣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시의 내용과 그림의 상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림의 대다수가 풍경화이기에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이 제한적인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시와 그림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이 책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시를 위해 그림을 그렸다면 그림이 시에 종속되어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감상하기 어려운데 비해 처음부터 관련이 없는 그림을 넣었기에 시와 그림 모두 하나의 작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시와 그림 사이의 연관점을 찾으며 여운이 더 길게 남는 효과도 있다. 여러모로 저자가 화가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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