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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시

「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by omicron2000 2020.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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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시가 가장 가치있는 순간

 
그 쇳물 쓰지 마라(리커버)
‘제페토’라는 이름을 쓰는 누리꾼은 사람들에게 ‘댓글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2010년 한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망한 기사에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추모시가 그 이유였다. 그 시는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청년의 추모동상을 세우자는 움직임과 함께 이런 억울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각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댓글시인 제페토는 그 이후에도 꾸준히 시 형식의 댓글을 남겼고, 누리꾼들은 그의 시를 캡쳐해 공유하기도 하고 일부러 그의 댓글을 찾아 들어가기도 했다.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는 댓글 세상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사유를 아름답고 고통스럽게 풀어낸 댓글시인 제페토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쓰인 그의 댓글 시와 개인 블로그에 올린 시를 엮은 책이다.
저자
제페토
출판
수오서재
출판일
2016.08.22

 나는 평소 시집을 자주 읽지 않는 편이다. 짧은 글로 긴 여운을 남기는 시의 특성상 여러 편의 시를 한 권에 몰아서 읽으면 시 한 편을 곱씹으며 읽을 때만큼의 감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며, 시를 읽고자 찾아 읽는 것보다는 우연히 시를 접해서 읽을 때 여운이 더 오래 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평소에 가장 즐겨 읽는 시는 지하철 승강장에 있는 작품들이다. 이런 시들은 유명 시인의 작품도 있지만 시민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작품도 있어 항상 읽는 데 의외성이 있으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감동을 받으니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시인 제페토는 나에게 있어 최고의 시인이다. 그는 종이에 시를 쓰는 대신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 시를 쓰는 시인으로, 자신의 신상도 일체 밝히지 않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시만을 볼 수 있으며, 뉴스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시를 쓴다는 점에서 누구나 공감이 가능하다.

 그를 처음 접한 것은 뉴스에서였다. 2010년에 한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사망한 사고가 있었는데, 해당 사고를 다룬 뉴스의 댓글에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시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를 추모하는 동상을 만들라는 이 시는 뉴스를 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고, 이후 그의 시를 모은 시집이 「그 쇳물 쓰지 마라」이다. 책에는 시와 함께 해당 시가 달린 뉴스 기사를 함께 실어 어떤 사건을 바탕으로 했는지 보여 준다. 뉴스에서 주로 다루는 사건이 사건인만큼 주로 사고 등 슬픈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의 일상을 주제로 한 시도 있는 등, 주제에는 크게 제약이 없는 편이다. 다만 그의 시가 어떻게든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뉴스 기사를 기반으로 한 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보면 사회참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 또한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시가 주류 문학이었기 때문에 감정을 드러내거나, 하고 싶은 말을 하거나,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등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시를 쓰곤 했지만 현재는 시집의 소비도 줄고 시를 읽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 대신 전자기기를 사용해서 뉴스를 보는 현대인들에게 시인 제페토는 시가 우리 사회에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뉴스 속에서 몇 줄의 짤막한 문장을 통해 잊힐 뻔한 사고를 사람들에게 일깨워주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동을 전하는 일이다.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살아 움직이는 피노키오를 만들었듯이, 그는 글을 깎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살아있는 한 편의 시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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