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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SF

「왓치맨」- 앨런 무어, 데이브 기번스

by omicron2000 2022.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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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

 
왓치맨 디럭스 에디션(DC 그래픽노블)(양장본 Hardcover)
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 1985년 10월, 에드워드 블레이크라는 인물의 시신이 발견된다. 한때 슈퍼히어로 팀 미닛맨의 일원이었던 그는, 마스크 금지 법안인 킨 법령 발효 후 정부 요원으로 활동하던 코스튬 모험가 코미디언이었다. 별다른 단서도 없어 수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마찬가지로 코스튬 모험가이지만 불법 활동으로 수배 중인 로어셰크가 이를 조사하며 일련의 사건을 관통하는 공통점을 찾고 그 배후를 추적한다. 한편 과거 한때 로어셰크와 함께 활동했던 모험가 나이트 아울과 실크 스펙터, 닥터 맨해튼과 오지만디아스의 신변에도 음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데…. 1986년에 처음 발표되고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그래픽노블 사상 최고의 작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이로운 걸작이다. 수많은 수상 경력을 자랑하며 특히 타임 매거진 선정 ‘1923년 이후 발간된 영문 소설 100선’에 포함된 유일한 그래픽노블이다. 어떤 수식어도 부족하고,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기념비적 작품.
저자
앨런 무어
출판
시공사
출판일
2019.03.30

 '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는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의 풍자시에 나오는 대목으로, 아내의 불륜을 막기 위해 감시자를 고용한다 해도 그 감시자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를 테니 이는 누구에게 감시를 맡기겠냐는 내용이다. 본질적으로 '감시'라는 행위 자체의 맹점을 지적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소에도 아나키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곤 하는 앨런 무어는 이 격언을 마찬가지로 인용한다. 슈퍼히어로가 범죄를 막는다고 하지만, 그 슈퍼히어로가 타락해서 시민들을 해칠 의도를 갖게 된다면? 슈퍼히어로를 감시하는 상위의 슈퍼히어로를 만들어야 하나? 그렇다면 이들이 또 타락한다면? 절대적이고 완전한 최상위의 슈퍼히어로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제 여기에서 슈퍼히어로를 정부, 공권력으로 대체한다면 앨런 무어가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왓치맨」은 현실의 역사와 상당히 유사한 역사를 거쳐온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에서는 한때 자경단이 활동했는데, 거의 신적인 힘을 지닌 닥터 맨해튼을 제외하면 아무도 초능력이 없어 단지 일반인보다 조금 더 힘 센 집단에 불과했다. 이들의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고 일부 히어로가 사망하자 결국 해체되었는데, 시간이 흘러 히어로들이 다들 죽거나 일상을 살고 있을 때에 자경단의 전 구성원이었던 코미디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왓치맨」은 로어셰크가 이 사건을 추적하는 것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코미디언을 살해한 것은 다름아닌 옛 동료 오지만디아스로, 그는 국가 간의 전쟁을 멈추고자 가공의 적을 만들어내기로 하고, 뉴욕 한복판에서 외계 생명체의 침공을 가장해 대폭발을 일으킬 심산이었던 것이다. 코미디언은 그의 계획을 어느 정도 눈치채서 오지만디아스의 손에 죽었던 것이고, 로어셰크와 나이트 아울이 그를 막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닥터 맨해튼만이 그를 막을 수 있었지만 그조차 오지만디아스의 행동에 일리가 있었음을 인정하며, 로어셰크는 그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현실과 가상의 사건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능력이 탁월한 앨런 무어의 작품답게 「왓치맨」에는 수많은 비유와 상징이 숨겨져 있다. 코미디언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바 있고, 미니트맨의 해체는 당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극중극으로 나오는 '검은 수송선'은 작중 상황에 대한 은유고, 닥터 맨해튼은 이름에서도 암시되듯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강한 힘인 원자폭탄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런 모든 요소를 해석하기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무리가 있고 「왓치맨」에 대해서는 좋은 해석이 이미 많기 때문에 작품의 핵심인 감시자에 대한 요소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우선 '감시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에서 감시자들이 작품의 슈퍼히어로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오지만디아스는 감시자들을 감시하는 상위의 감시자이다. 미니트맨이 초능력은 없지만 일반인보다는 강했던 것처럼, 오지만디아스는 (본인도 초능력은 없지만) 권총 탄환을 잡아내는 신체능력과 압도적인 지능을 가지고 이들을 '감시'했다. 오지만디아스보다 상위에 있는 감시자는 닥터 맨해튼이 있으나, 그는 지나치게 전능한 나머지 인간의 일에 점점 무관심해져 오지만디아스를 막지 못했다. 즉 감시자는 몇 단계의 감시자라 할지라도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지만디아스의 이름은 퍼시 비시 셸리의 시 <오지만디아스>에서 유래했는데, 이 시는 한때 왕 중의 왕이었으나 시간이 흘러 부서진 석상만이 남은 파라오 람세스를 다룬다. 「왓치맨」의 오지만디아스 또한 마찬가지로, 당장은 평화를 이룩할 수 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의 업적은 점점 풍화되고 다시 전쟁의 시기가 올 것이 암시된다. 이를 종합하자면 시민의 비행을 막기 위해 감시자가 동원될 경우, 이들의 비행을 막을 상위의 감시자를 필요로 하게 되고, 이들이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있겠으나 이것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현실로 확대하자면 현대의 군대나 공권력은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잠시동안 희생을 동반한 평화를 연장시킬 수 있을 뿐이니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반대로 이들이 없어져야 한다는 논리인데, 슈퍼히어로 만화에 자주 참여하던 앨런 무어가 드물게 슈퍼히어로 자체를 회의적으로 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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