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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SF

「신비의 섬」- 쥘 베른

by omicron2000 202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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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신비한 것은 섬이 아닌 인간의 끝없는 의지와 지혜이다.

 

신비의 섬 1

<해저 2만리>의 뒤를 잇는 파란만장한 모험소설'근대 과학소설의 선구자' 쥘 베른의 서거 100주기를 기념하여 기획된 [쥘베른 컬렉션]의 아홉 번째 작품인 『신비의 섬』제1권. <해저 2만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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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 작가로 잘 알려진 쥘 베른은 어린 시절부터 여행에 큰 동경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성향은 그의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어 수십 편에 달하는 모험소설을 집필하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 여행과 모험을 다룬 그의 50여 개의 작품은 '경이의 여행'(Voyages extraordinaires)이라는 시리즈로 불리는데, 쥘 베른의 대표작들은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신비의 섬」은 그중에서도 12번째로 발표된 작품으로, 특이하게도 그의 이전 작품인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의 에이턴과 「해저 2만 리」에 나오는 네모 선장이 등장한다. 「신비의 섬」의 주인공들이 주가 되고 에이턴은 2부에서 합류, 네모 선장은 3부의 조연일 뿐이기에 기존 작품의 후속작이라기보단 독립적인 작품에 가깝고,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크로스오버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비의 섬」은 제목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듯, 어떤 섬에 표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확히는 미국 남북전쟁 때 남군에 포로로 잡혀 있던 북군 사람 다섯 명(과 개 한 마리)이 기구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다 사고로 섬에 조난당한 것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시계와 개 목걸이, 밀알밖에 가진 게 없었지만 만물박사 사이러스 스미스의 지휘 하에 각자의 장기를 발휘하며 생존해 나간다. 섬 밖에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섬에 있는 동식물과 광산에서 자원을 채취해 철을 제련하고 다이너마이트까지 만든 것이다. 이 발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섬을 자신들의 유토피아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1부의 내용이다. 2부에서는 새 등장인물로 에이턴이 등장하는데, 홀로 살아 야만인이 된 그를 문명화시키는 것이 2부의 목적이다. 3부에서는 섬에 침입한 해적을 물리치고, 네모 선장을 만나 섬에서 탈출하며 끝이 난다.

 이렇게 간략한 내용을 보면 「로빈슨 크루소」를 비롯한 다른 표류 소설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비현실적이다. 심지어 쥘 베른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도 그렇다. 조난자라면 하루하루 힘들게 먹고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데, 「신비의 섬」의 주인공들은 온갖 기계장치를 만들어 오히려 섬 밖보다 안락하게 살기 때문이다. 어떤 과정으로 자원을 구하고, 제련하고, 가공하는지에 대해 간단한 설명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 모든 기술을 알고 있는 사이러스 스미스는 물론, 이를 금세 성공해 내는 상황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온갖 천연자원이 풍부한데다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농사까지 가능한 섬이라는 배경도 작위적이기만 하다. 이런 상황이 생긴 것에 대해 변호하자면 쥘 베른과 당대 특유의 벨 에포크 분위기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시각 말이다. 따라서 「신비의 섬」은 매우 강력한 인간 찬가적 소설이다. 아무것도 없는 땅을 낙원으로 만들고, 야만인에게 문명의 혜택을 부여하며, 해적을 물리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는 네모 선장의 서사에서 한 번 더 강조되며 마무리된다.

 1,2부엔 언급도 없다가 3부에 들어서야 비로소 나오는 인물이지만 사실 처음부터 사이러스 일행을 비밀스럽게 도왔고, 그들이 침몰하는 섬에서 탈출하도록 해 준, 「신비의 섬」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네모 선장도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해저 2만 리」에서는 시종일관 '미지의 사나이' 그 이상도 이하도 보여주지 않은 인물이지만, 여기에서 그의 과거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 밝히길 자신은 본래 인도의 한 토후국의 왕자였다고 한다. 그는 서구 열강의 침략에 맞서고자 힘을 키우기 위해 유럽으로 유학을 가 항해술 등 기술을 배웠으나, 자신의 조국이 끝내 식민지로 전락하자 이에 분노해 노틸러스호를 타고 바다를 고향으로 삼은 것이다. (이름을 '아무도 아니다'라는 뜻의 네모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제국주의가 만연했던 19세기에 열강에 저항하는 독립운동가와도 같은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노틸러스호를 타고 「해저 2만 리」의 모험 끝에 소용돌이에 휩쓸린 그는 신비의 섬에 도착했고, 사이러스 일행을 보게 된다. 그는 조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기에 세상에 대해 염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이러스가 싸웠던 남북전쟁이 노예를 해방하기 위한 싸움이라는 것을 듣고 인류애를 회복하게 되는데, 이 또한 위의 인간 찬가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해저 2만 리」에서 불완전하게 마무리된 네모 선장의 서사를 완전히 끝마침과 동시에 지나칠 정도로 순탄했던 진행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신비의 섬」에서 쥘 베른은 미국 남북 전쟁이라는 배경을 '노예 해방을 위한 전쟁'으로, 나아가 핍박받던 자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으로 재해석하였다. 똑같이 남북 전쟁을 소재로 한 「지구에서 달까지」와는 대조적인 시각으로, 여기에서 남북 전쟁은 '누가 더 크고 강한 대포를 만드나' 수준의 무익한 사업에 불과하다 해석했다. 이는 등장인물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바비케인 회장은 대포 발사를 취미로 하는 사업가였다면 네모 선장은 압제에 저항하는 전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 전쟁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와는 별개로 둘 모두 동일한 주제를 담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바비케인 회장은 전쟁에 낭비되던 인류의 지성을 달에 가는 데 발휘했다면, 네모 선장은 같은 전쟁 속에서도 인류애라는 숭고한 이상을 발견한 것뿐이다. 사이러스 일행이 보여준 과학기술은 그 지성의 일부분일 뿐이었음에도 그들이 사는 섬을 낙원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전쟁이 없다면 인류애와 지혜로 지구를 유토피아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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