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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SF

「엔더의 게임」- 올슨 스콧 카드

by omicron2000 2021.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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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구원자, 어른들의 희생양, 그저 한 명의 아이

 

엔더의 게임

SF․판타지의 컬트 클래식사상 최초로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동시에(1986년), 그것도 후속편까지 두 번을 연이어 수상한 오슨 스콧 카드의 대표작. 대개의 SF판타지 순위 리스트의 최상위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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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미래의 발전한 인류가 곤충 형태의 외계인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소재는 수많은 SF 작품에서 다루어진 바 있다. 그 시초 격인 「스타쉽 트루퍼스」부터 시작하여 유명 게임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저그까지, 서로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두 종족의 전쟁은 소설, 영화, 게임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이미 SF 장르의 대표적인 클리셰가 되었다. 곤충 형태를 한 것으로부터 짐작할 수 있듯, 이런 종족은 대개 여왕벌이나 여왕개미처럼 특별한 하나의 개체가 전체를 통제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엔더의 게임」또한 마찬가지로 '포믹'이라는 외계 종족과 전쟁을 벌이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성인 군인을 주역으로 내세운 대부분의 작품과는 달리, 주인공이 어린아이라는 점에서 크게 차별화된다. 주제도 전쟁 그 자체보다는 소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작중 배경은 포믹과의 전쟁이 한 차례 벌어진 뒤의 지구다. 사람들은 가정당 두 명의 아이만을 낳아 키우도록 되어 있으나, 주인공 엔더는 유일하게 셋째로 태어난 아이였다. 지구에서는 포믹의 재침공에 대비해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장교로 양성하고 있었는데, 엔더의 형과 누나는 성품이나 능력의 문제로 지휘관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장점을 모으고자 태어난 아이가 바로 엔더였고, 그리하여 천재로 태어난 그는 열 살도 채 되기 전에 우주로 떠난다. 이 뒤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부분은 우주 기지에서 엔더와 다른 아이들이 훈련을 받는 내용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다가올 포믹과의 함대전에 대비해 무중력 상태에서의 전투를 배웠다. 엔더는 특유의 유연한 사고를 발휘, 무중력 상태의 공간에서 지상의 방향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다양한 전술을 구상해 내고, 팀의 리더로서 높은 승률을 기록하는 것이 이 부분의 스토리이다. 책의 후반부에 비하면 이 전반부는 분위기가 매우 밝다는 특징이 있다. 10살 남짓한 어린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학생 나이의 주인공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지휘관으로 성장한다는 점에서는 하이틴 장르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어쨌거나 높은 성과를 보인 엔더의 팀은 최종적으로 선발되어 본격적인 군사 훈련을 받으러 간다.

 전반부에서 받은 훈련이 팀 대항 서바이벌 게임에 가까운 형태였다면, 후반부에 받는 훈련은 함대를 지휘하는 법을 배우는 실전 훈련이었다.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전쟁영웅 메이저 래컴에게 직접 지도를 받으며 대단히 사실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함대를 이끄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마치 게임을 하면서 점점 어려운 과제를 깨듯이, 아이들은 갈수록 낡고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상대하게 된다. 그러다 포믹의 행성을 목표로 한 마지막 훈련이 되자, 엔더는 함대에게 자살에 가까운 공격을 시킨다는, 무리하고도 과감한 전략을 펼쳐 포믹의 몰살에 성공한다. 그러자 군인들은 포믹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며 이 훈련의 진실을 알려주는데, 여기에서 커다란 반전이 드러난다. 사실 지금까지 해오던 훈련은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상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선 광속 이상의 속도로 통신이 가능한 앤서블이라는 기술이 만들어졌고, 인류는 1차 전쟁 이후 포믹에게 선공을 가하고자 오래 전부터 함대를 보내왔다. 그리고 해당 함대와는 앤서블로 통신을 하며 엔더가 실시간으로 그들을 지휘하게 한 다음, 아이들에게는 이를 시뮬레이션이라 속이며 비밀에 부친 것이다. 갈수록 함대가 구식화되던 것은 단지 그들이 더 오래전에 보낸 함대라 멀리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엔더가 자폭 돌격을 시킨 함선은 그의 명령을 듣고 기꺼이 죽으러 갔던 것이며, 엔더는 자신이 그들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자책한다. 심지어 뒤에 밝혀지는 내용으로는 이게 반전의 끝이 아니었다. 포믹은 사실 인류와 전쟁을 벌이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으며, 인류와 사고방식 자체가 너무 달라 서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독립적인 감정과 자율성을 지닌 인간과는 다르게 포믹은 여왕 한 개체만 본체라고 할 수 있고, 나머지는 그 수족에 불과한 종족이었다. 포믹 여왕이 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했을 때에는 이미 늦어 어쩔 수 없었다. 전쟁이 모두 끝난 뒤 엔더는 한 식민지 행성에서 유일하게 남은 포믹 여왕의 알을 발견해 안전하게 부화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며 끝이 난다.

 어떤 상황이든 소통의 문제로 인해 분쟁이 일어난다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도 없을 것이다. 양측 어느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았을 텐데, 이를 깨달을 때에는 「엔더의 게임」의 포믹처럼 너무 늦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엔더의 게임」의 인간처럼 알면서도 전쟁을 결코 멈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소통을 거부한 것도 아니고, 서로 대화가 통하기만 했어도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지만 나와 다른 자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이 책은 소통에 의한 전쟁을 아이의 눈으로 보여 준다. 「엔더의 게임」에서 1차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것도 어른들이고, 포믹을 공격해 모두 죽이고자 한 것도 어른들이며, 아이들을 속여 무기로 사용한 것도 어른들이건만 그들은 포믹을 죽이는 것에 대한 책임을 아이들에게 떠넘겼다. 진실은 끝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엔더는 영웅 대접도 받지 못해 쫓겨나다시피 떠나가는데, 그가 포믹의 알을 발견하는 것은 각 종족의 2세가 만나게 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엔더에게 있어서는 포믹을 몰살시킨 것에 대한 속죄이며, 마지막 남은 포믹에 대한 보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어른들에게 무조건적인 책임을 요구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포믹과의 1차 전쟁으로 지구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이로 가족을 잃은 자들이 복수심에 불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포믹을 해치우고자 하는 일념으로 엔더의 자폭 명령에 주저없이 따른 병사들을 생각해본다면 이들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을 이용한 것도 포믹의 전술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인재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며, 엔더가 지구로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은 그의 형 피터의 탓이 크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어른들이 비판받아야 할 점은 진실을 은폐하고 아이들을 속였다는 점이다. 마치 북한에서 자본주의자들은 괴물이라 가르치며 한국과 미국 등 외국에 대한 정보를 왜곡 선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저자가 어린 시절 냉전 시기를 겪은 경험에서 비롯한 특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전체가 곧 하나인 포믹이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은유라고 한다면 확대해석이겠지만, 적어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상반된 두 체계가 소통이 불가능한 인간과 포믹의 모습과도 닮았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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