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SF

「아인슈타인 적도」 - 류츠신

by omicron2000 2024. 10. 13.
반응형

과학은 어디로 가는가

 
아인슈타인 적도
가동을 앞둔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때는 가까운 미래, 우주의 비밀을 풀 마지막 실험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물리학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세운 거대한 시설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일까. 한껏 당황한 물리학자들 앞에 스스로를 ‘우주해결사’라 칭하는 외계인이 나타난다! 우주해결사는 이번 일을 자기가 주도했다며 입자가속기를 가동하면 지구는 물론이고, 우주 전체가 큰 위험에 처한다고 말한다. 우주의 비밀을 풀 기회를 놓친 물리학자들은 우주해결사에게 직접 비밀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지만 단번에 거절당한다. 우주의 질서에 따라 인류는 영원히 우주의 비밀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한 물리학자가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인류가 우주의 비밀을 알아 낼 방법이 있다며 우주해결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우주해결사는 이를 흔쾌히 수락하게 되는데……. 우주해결사는 어떤 조건으로 물리학자의 제안을 수락했을까? 과연 인류는 우주해결사로부터 우주의 비밀을 들을 수 있을까?
저자
류츠신
출판
자음과모음
출판일
2019.05.07

「삼체」로 유명한 류츠신 작가의 단편 네 편을 엮은 책이다.

 이 중 가장 잘 쓰였다고 생각되는「바다산」은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다 동료를 잃고 뱃사람이 된 펑판의 이야기다. 산을 떠나 바다로 간 그였지만, 별안간 외계 비행체가 지구에 접근해 중력 이상으로 바닷물이 빨려올라가 에베레스트보다도 높은 산을 이뤘고, 펑판은 무언가에 이끌려 이 바다산을 헤엄쳐서 오른다. 그 끝에서 우주선을 타고 온 외계생명체를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이들은 '거품 세계'라고 부르는 중력이 없는 세계에서 온 규소생명체로, 이들이 어떻게 거품 세계를 떠나 지구에 도달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말한다. 사실 이들이 온 행성은 내부가 비어 있는 행성이었다. 사방에서의 중력이 상쇄되어 무중력으로 여겨졌던 것인데, 이를 몰랐던 과학자들은 바깥으로 땅을 파며 우주관을 확장시켰고, 이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수립하던 과정을 연상시킨다. 현실과 완전히 다른 우주를 가정하고 그곳에서의 과학관을 다룬다는 점에서 테드 창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어쨌거나 이들은 펑판에게 우주 또한 무한하다고 여겨지지만 하나의 거품이 아닐까 하는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끝없이 탐구해 나가는 과학자의 정신을 담는다.

「최초의 빛」은 한 항성에서 나온 빛과 동일한 패턴의 빛이 다른 항성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을 한 의사와 천문학자가 탐구하는 내용이다. 별들은 수 광년씩 떨어져 있기에 이를 검증하기 위해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다 빛이 돌아오는 주기마다 천문대에서 만나는데, 항성이 내는 빛이 마치 생물의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와 같다는 결론을 얻는다. 우주가 생물의 뇌라는 관점은 여러 작품에서 인용된 바 있지만, 이 경우에는 사람의 관계 또한 별과 별, 세포와 세포의 관계처럼 빗댄다는 것이 특징이다.

「메시지」는 짤막하고 간단한 내용이다. 한 노인의 바이올린 연주를 매일 찾아오는 특이한 손님이 사실 과거로 온 미래의 여행자라는 내용인데, 이 노인의 정체가 반전이라면 반전이지만 너무 일찍 눈치채는 바람에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표제작「아인슈타인 적도」는 세계 최초의 입자가속기가 사라진 사건을 다룬다. 당황한 물리학자들 앞에 우주해결사라는 인물이 나타나 자신이 입자가속기를 없앴다며 설명하는데, 입자가속기를 가동할 경우 진공 붕괴가 일어나 우주가 멸망할 수 있기에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한다. 그는 우주 곳곳의 문명을 감시하며 우주가 붕괴될 위기가 생기면 이를 막아오던 것이다. 우주의 진리에 다가선다는 염원이 무산된 물리학자들은 좌절하나, 우주해결사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과학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신, 이 지식을 가지고 있어선 안 되기에 듣고 난 뒤 10분 뒤에 고통 없이 죽게 해 준다는 것이다. 약속된 날이 되자 과학자들은 가족의 만류를 뒤로 하고 각자의 진리를 알게 된 뒤 사라지는데, 호킹 박사의 우주의 목적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고 그를 돌려보낸다. 이후 세월이 흘러 이때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이가 물리학자가 되려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나는데, 이 또한 「바다산」처럼 끝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를 그린 듯하나 영 공감이 어렵다. 우주해결사에 대한 부분이 억지투성이인 것 (예를 들어, 어차피 죽을 거면 모두의 질문을 모아서 한 번에 알려주지 한 명이 질문 하나의 답만 듣게 할 이유가 어디 있나) 은 둘째 치고, 이론물리학자 아니면 과학을 해 본 적 없는 사람이나 할 법한 발상이다. 과학을 탐구하며 알게 되는 작은 사실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성과이고 진리인데, 이를 찾는 모든 과정을 내다버리고 그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듣는 것이, 답안지 하나 본다고 인생을 버리는 것이 과학자의 태도가 맞나? 특히 작중에서 물리학자들은 통일장 이론에 대해 묻지만 고생물학자들이 고작 '공룡이 멸종한 진짜 이유' 따위를 묻는데, 이는 작가가 애당초 이론물리학자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 뿐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