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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수학

「셈도사 베레미즈의 모험」- 말바 타한

by omicron2000 2020.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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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와 셈, 사랑과 지혜가 담긴 목동 베레미즈의 여정

 
셈도사 베레미즈의 모험(개정판)
페르시아의 한 작은 마음의 목동 베레미즈 사미르가 풀어나가는 인생과 수학에 대한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 35마리의 낙타를 셋으로 나누기 위해 싸우는 아랍 형제, 황금거위 여관의 숙박료를 둘러싼 수수께끼, 행복한 결혼을 위해 떠나던 릴리바티의 운명을 뒤바꾼 진주 한 알, 아름다운 공주는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세 왕자의 싸움 등 천부적인 수학 능력을 지닌 베레미즈는 현자들조차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명쾌하게 해결하는데…… 이 책은 ‘아라비안 나이트’가 지닌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에 가벼운 터치로 수학을 재미있게 덧입혔다. 이국적인 페르시아의 향기와 바람을 느끼며 베레미즈와 재미있는 여행을 떠나다 보면 어느새 수학이란 바다에 빠졌다가 나왔음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재미있고 친근하게 읽을 수 있다.
저자
말바 타한
출판
경문사
출판일
2020.07.01

 페르시아 지방에 베레미즈라는 목동이 살았다. 평범한 목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오래 전 동물들을 바라보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고, 이내 셈에 통달해 수학에 대해 온갖 지식을 꿰고 있는 셈도사였다. 얼마나 셈에 능통하냐면, 날아다니는 벌레의 숫자를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고, 수많은 동물을 셀 때에는 머리가 아니라 다리의 수를 더해서 구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아라비아에는 상인이 많았기 때문인지 수학과 계산이 중요시되었고, 수학자들도 많이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셈도사인 베레미즈는 당연하다면 당연히도 모험 도중 여러 곳에서 환대를 받으며 사람들을 도와준다. 그는 유산 배분 문제로 다투던 형제를 중재하거나, 돈 때문에 싸우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하였다. 한 번은 어느 여인에게 수학을 가르쳐준 적이 있었는데, 그녀와 사랑에 빠진 베레미즈는 일곱 현자가 내는 어렵고도 난해한 문제를 풀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앞에서 베레미즈가 해결해 준 사람들의 문제들도 생각해보면 그는 단지 '셈'만으로 부와 명예, 사랑까지 모든 것을 얻은 셈이다. 수학 교육자였던 저자가 인생에 있어서 수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이를 통해 역설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베레미즈의 모험을 화자가 직접 보면서 말해 주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인 작품이다. 수학교양서 치고는 특이한 사례이다. 화자는 베레미즈만큼 수학적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베레미즈와 주변인들의 말에서 간간이 언급되며 그 나름대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런 셈도사와 그의 동료가 하는 대화를 보면 마치 명탐정 셜록 홈즈와 조수 왓슨이 연상될 정도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가 왓슨의 시점에서 서술되었으나 대부분의 활약은 홈즈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서술 방식은 예상외로 크게 효과적이었다. 사실 초인적인 셈하는 능력을 지닌 베레미즈에게 독자가 이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대신 독자가 이입할 수 있는 '평범한 관찰자'를 만들어준 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베레미즈의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신비주의적인 면모도 띠게 한다. 화자가 하는 것도 없는 주제에 베레미즈에게 얹혀서 일자리도 얻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베레미즈의 능력을 알아채고 세상에 드러내도록 한 공이 있으니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일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런 서술 방식은 「셈도사 베레미즈의 모험」이 상당한 문학성을 띠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셈도사 베레미즈의 모험」에서 다루는 일부 수학문제(대표적으로 낙타 분배 문제)는 사실 다른 교양수학서에도 자주 나오는 내용이긴 하다. 그러나 이 책만이 가지는 특징이 있다면 수비학과 이야기이다. 수비학이란 수에 종교적,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는 학문으로, 피타고라스 학파가 5를 완전한 숫자, 8을 우주를 상징하는 숫자라 부르던 것이 그 예시이다. 미신적 성격이 짙기 때문에 현대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개념이나 저자는 수비학을 조금 응용해 수학적으로 활용한다. 16살인 딸의 나이와 낙타가 256마리라는 점을 가지고 256은 16의 제곱이라는 점에 의미를 담고, 220과 284는 각자의 진약수의 합이 서로가 된다는 점을 가지고 이들이 친화수라는 속성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식이다. 또 다른 특징은 수학적 사실을 말할 때에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으로, 인도의 위대한 수학자 바스카라와 그의 딸 릴라바티(둘 다 실존인물이다)의 이야기가 그렇다. 릴라바티가 가장 좋은 날 결혼할 수 있도록 바스카라는 일종의 물시계를 만들었는데, 릴라바티가 그 안을 들여다보다 진주가 빠져 물시계가 막히고, 결국 결혼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다. 바스카라는 실제로 수학을 시로 써 노래한 인물이므로 이런 이야기는 대단히 적절하다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베레미즈에게 주어진 현자의 시험에서 사자와 호랑이, 하이에나를 통해 숫자를 하나도 쓰지 않고 식을 보이는 과정이라거나, 성급한 일반화로 잘못된 결론을 내는 수학적 예시를 제시하는 부분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부를 만하다. 더구나 이런 이야기에서 단순히 수학적 지식만 보이지 않고, 인생의 지혜와 함께 연결지어 말하니 이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수학의 필요성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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