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문학/역사

「이덕무의 열상방언」 - 엄윤숙

by omicron2000 2021. 11. 2.
728x90

말에는 삶이 담겨 있고, 속담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

 

이덕무의 열상방언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가 엮은 속담집 "누워서 떡 먹기"는 "쉽다"는 뜻이 아니다. 애초에 이 속담은 "누워서 떡을 먹으면 콩고물이 떨어진다"이다. 떡을 누워서 먹다가 얼굴을 더럽히고 게을

book.naver.com

 속담이란 말 그대로 속된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고상한 양반 계층이 쓰는 말이 아닌,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문장을 속담이라 한다. 삼국유사에도 속담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사용되었지만 속담으로서 문헌에 언급된 것은 조선 중기부터인데,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조선 후기에는 정약용이나 이익 등의 실학자들이 속담 사전을 쓰기도 했다. 이덕무 또한 속담에 관한 책을 쓴 실학자로, 그의 저서 「청장관전서」 중 「열상방언」은 조선의 대표적인 속담을 한자로 옮겨 적은 뒤 '이런 말이다'라면서 자신의 해설까지 덧붙인 책이다. 수록된 속담 중 일부는 현재 사용되지 않지만 상당수의 속담은 아직까지도 사용되며, 그중 일부는 형태가 달라졌는데, 이를 통해 속담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식은 죽 먹기'나 '누워서 떡 먹기'라는 속담을 매우 쉬운 일을 말할 때 쓰곤 한다. 하지만 이덕무가 쓴 속담은 조금 달랐다. 우선 '식은 죽 먹기'는 원래 '남 말하기란 식은 죽 먹기다'로, 타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식은 죽을 먹는 것만큼 쉽다는 뜻이라고 한다. 더 깊이 들어가보면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쉬운 반면 말을 아끼는 것은 뜨거운 죽을 먹는 것처럼 어려우니 타인에 대해 언급할 때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다. 반면 '누워서 떡 먹기'는 원래 '누워서 떡을 먹으면 콩고물이 떨어진다'로, 편하게 하려다 도리어 손해를 입는다는 뜻이다. 누워서 떡을 먹으면 콩고물이 떨어져 옷이 더러워지는 것은 물론, 남들이 보기에도 게으르고 한심해 보일 것이다. 이렇듯 당시에는 완전히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앞부분과 뒷부분이 잘려 '쉽다'는 뜻만 남게 되었다. 속담의 의미와 형태 모두에 변형이 생긴 것이다. 속담의 변천사를 아는 것이 학술적으로 별 의미가 없어 보일 수도 있는데, 이덕무가 이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고전문학을 해석하는 데 오류를 범했을지도 모른다. 속담은 언어의 일부이기에, 속담의 변화를 아는 것은 언어의 변화를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이 책이 단순히 「열상방언」의 내용을 옮겨 적은 것은 아니다. 각 속담마다 이덕무의 해설 말고도 저자가 추가한 해석이 따로 있고, 여기에는 주로 당대 실학자들의 저서에서 발췌한 내용이 포함된다. 「열상방언」의 저자 이덕무는 물론, 정약용이나 이익 등 다양한 인물이 언급되며, 실학자가 아니더라도 조선의 유학자가 쓴 글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유학자들의 글이 속담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은 이덕무가 유학의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는 속담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정체성과도 연관된다. 상민의 언어인 속담과 양반의 언어인 유학 사이에서 중용을 찾아낸 것 자체가 둘의 중간계급인 중인이자 실학자였던 그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