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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역사

「책만 보는 바보」- 안소영

by omicron2000 2021.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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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와 서얼 친구들, 사회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책만 보는 바보

독서가들의 입소문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받는 우리 시대의 새 고전책만 보는 바보사실과 상상으로 빚어낸 조선시대의 책벌레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책만 보는 바보’라 불렸던 이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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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 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릴 정도로 국력이 강화되고, 과학기술과 문화가 크게 발전한 시기였다. 그리고 이 발전에 실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기존의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성리학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 이들은 서구의 과학기술을 수용하거나 현실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등 진보적인 행보를 보였는데, 이 책의 주인공 이덕무 또한 이런 실학자 중 한 명이었다. 특히 그는 다른 여러 실학자들과 가까이 살며 교류하였기에 그의 집이 있던 곳에서 따 그의 무리를 백탑파라 부른다. 「무예도보통지」 편찬에 참여한 이덕무의 처남이자 무인 백동수, 「북학의」를 써 청나라로부터 기술을 배워오자 주장한 박제가 외에도 유득공과 이서구 등이 백탑파 벗들이었으며, 「호질」과 「양반전」으로 유명한 문인 연암 박지원과 과학자 담헌 홍대용 또한 같은 동네에 살며 교류했다고 한다. 이런 실학자들의 특징을 꼽자면 대부분이 서자 출신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두가 서얼인 것은 아니고, 오히려 사대부 집안의 실학자도 적잖이 있었지만, 기존의 체제인 성리학에 반발한 자들이니만큼 사회에서 외면받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은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까이 지내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이 연구한 실학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본질적으로는 백성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학문이었는데, 실학자들부터가 소외받는 출신의 서자들이었으니 어려운 백성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문제를 직접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실학자들의 이런 정신은 그들의 저서를 통해 알 수 있으며, 이 책에서도 이덕무의 마음가짐을 발견할 수 있다.

 「책만 보는 바보」는 이덕무가 쓴 자서전 「간서치전」을 현대 말로 풀어서 쓴 책이다. 여기서 간서치(看書痴)란 그의 별명이기도 한데, 이 책의 제목처럼 말 그대로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이다. 그만큼 그가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말로, 자신의 자서전 제목으로 바보라는 별명을 적은 것을 보면 본인도 이 별명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의 독서 습관이나 책과 관련된 경험을 자서전에 담아 자랑하듯이 썼는데, 여기서 드러나는 책에 대한 그의 애정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 예로, 이덕무는 가난하게 살아 집이 작았지만 사방으로 창문이 나 있어 아침에는 동쪽으로, 낮에는 남쪽으로, 저녁에는 서쪽으로 몸을 돌려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고 하며, 배고플 때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며 독서의 이점을 주장하기도 했다. 원하던 책이 있어도 살 돈이 없어 아쉬워하거나 급히 돈이 필요해 책을 팔아가면서 돈을 마련하는 부분은 읽는 사람이 안타까워질 정도이다. 가난하게 살면서 책을 좋아했다는 것을 보면 책에 빠져 일도 안 하고 돈을 쓰기만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후에 정조에게 등용되어 규장각에서 책을 관리하는 일까지 맡았다고 하니 독서가 확실히 도움이 된 모양이다. 그는 살면서 수만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하며, 심지어 한 권의 책을 읽을 때에도 늘 몇 번씩 반복해서 읽었다니 그야말로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는 내내 책만 읽었을 정도이다. 그는 단지 책을 많이 읽은 것으로도 모자라 책을 읽으며 따라 쓰고 교정하는 등 자신만의 독서 철학도 가지고 있었는데, 책 한 권을 읽어도 깊게 음미하듯 읽는 그의 습관은 가난했던 삶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만 보면 가난을 극복하고 인생의 대부분을 책 읽는 데에 쓴 굉장한 사람처럼 보이나 (반쯤은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책을 읽은 뒤에는 이덕무가 제법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자서전이라고는 하지만 일기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 특히 그렇다. 그는 단 것을 너무나도 좋아해 친구 박제가가 간식을 먹으며 장난친 적도 있고, 책을 좋아했던 만큼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즐겼다. 이런 점들을 보다 보면 그가 마냥 위대한 실학자라기보다는 마치 독자가 백탑파의 일원이 된 것과 같이 가깝게 느껴지는데, 이는 단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즐기는 모습이 현대의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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