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문학/역사

「사기열전」- 사마천

by omicron2000 2020. 11. 14.
728x90

"나 사마천은 이렇게 생각한다."

 
사기열전(꼭 읽어야 할 인문고전 동양편 8)
-
저자
사마천
출판
타임기획
출판일
2005.11.30

 「사기」는 사서의 표준을 정해 중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역사서로, 그 저자 사마천이 궁형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흉노가 한나라를 공격했을 때, 이릉이라는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흉노족과 싸우다 대패하여 항복하였는데, 기병 위주의 흉노족 상대로 불리하게 보병으로 맞선 데다가 졌다는 이유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한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유일하게 이릉을 변호했고, 황제 한무제는 이에 분노해 그에게 사형을 내린다. 당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였다. 순순히 사형당해 명예롭게 죽거나, 큰돈을 바쳐 사형을 면하거나, 아니면 사형 대신 궁형을 당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역사책을 써야 한다는 사명을 받았기에 그대로 죽을 수는 없었고, 그만한 돈도 없었으니 궁형을 택한다. 궁형을 받아 거세당한다는 것은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없게 되고 목숨을 구차하게 부지하는 것이라 여겨졌기에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사마천은 이를 받아들인다. 이후 그는 다시금 관직을 얻어 역사서를 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기」이다.

 「사기열전」은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서 「사기」 중 '열전' 편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사기」는 황제의 역사서인 '본기', 제후의 역사서인 '세가', 간단한 연표인 '표', 특별한 주제를 정해 다루는 '지', 그리고 황제도, 제후도 아닌 개개인의 이야기를 다룬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전체라고 하는 이러한 형식은 중국은 물론 한반도에도 받아들여져 표준적인 역사서의 형식으로 천 년이 넘게 쓰인다. 그런데 이 중에서 「사기열전」을 특별히 중요하게 다루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황제나 제후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인물이기에 잘 알려진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열전에서 다루는 인물은 타국의 지도자나 유명 사상가, 장군, 심지어는 의사와 개그맨까지 다양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예시로 흉노열전과 조선열전, 공자와 제자들을 다룬 중니제자열전, 한신열전, 편작열전, 우스개소리꾼을 의미하는 골계열전이 있다. 이는 당시의 다채로운 시대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주류 역사에서 조명받지 못한 인물들을 다루어 역사의 폭을 넓혀준다. 특히나 '골계열전'의 경우 돈도 관직도 없지만 우스개로 왕에게 깨달음을 주어 전쟁을 멈추기도 하는 사람들을 다루는데, 골계가 사회적으로 멸시받고 천대받는 계급임에도 그들의 이야기를 실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사기열전」이 높은 평가를 받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는 「사기」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역사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정사와 야사로 구분된다. 우선 정사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국가기관의 주도 하에 쓰이는 역사책을 말한다. 국가에서 지원하기에 다양한 사료를 수집할 수 있어 내용이 풍부하고 정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아 프로파간다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기에 맹신할 수는 없다. 반대로 야사는 개인에 의해 쓰인 역사책을 말한다. 외압을 받지 않고 쓸 수 있기에 내용에 제약이 없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지만 그 내용이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다. 정사의 대표적 예시로 「삼국사기」를, 야사의 대표적 예시로 「삼국유사」를 들 수 있는데, 이 둘을 비교하면 정사와 야사의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사기」는 나라의 사료를 가지고 만든 정사이면서도 사마천이 자신의 주관을 담아서 쓴 야사적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어서 둘의 장점을 모두 지니고 있다. 내용이 신뢰할 수 있으면서도 정치적 영향 없이 역사가 개인의 견해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당시 황제인 한무제를 폭군으로 강도 높게 비판한 일이 있다. 여기에 더해 '편작열전'에서 다루는 편작이라는 의사는 사람의 얼굴만 보고 병을 알아보며,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 할 정도로 비범한 능력의 인물인데 그가 여기에 실렸다는 점에서 야사적 특성에서 비롯하는 「삼국유사」와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사기열전」의 가장 큰 야사적 특징은 각 부분의 마지막 문장에서 드러난다. 매 열전마다 해당 인물에 대해 사마천 개인이 느낀 점을 한 줄로 정리해 쓰기 때문이다. 흉노열전을 예로 들어 보자. 흉노열전은 흉노족의 지도자인 묵돌 선우가 자신의 아버지인 두만 선우를 몰아내고 선우가 되어 세력을 키운 뒤 한나라와 맞서는 내용을 담는다. 사마천이 궁형을 받은 원인 중 하나가 흉노족의 공격인 데다가 한나라는 흉노와 적대적 관계였기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가 있는 편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놀랍게도 사마천은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역사에 남을 위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보기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이를 지적했고, 조선열전처럼 비교적 객관적 평가를 남긴 경우도 있었다. 복수를 위한 삶을 살았던 오자서에게는 무언가 자신과 닮은 점을 발견해서인지, 그를 대장부라고 평하기도 했다. 닭의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뜻하는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말은 '맹상군열전'에 나오는 말로, 짐승 울음소리를 따라 하는 쓸데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의외의 장소에서 능력을 발휘해 맹상군을 도운 이야기를 뜻하는데, 어떤 재주든 쓸 데가 있다는 교훈적 의미로도 해석되지만 사마천은 맹상군을 대단히 나쁘게 보았다. 그가 천하의 온갖 난폭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식객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어느 마을에서 누군가 맹상군을 놀리자 식객들이 그 마을을 초토화시킨 적도 있다고 하니, 사마천의 평가는 날카로운 면이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 전까지 역사는 과거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런 기존의 인식에 반대하며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는 역사에 있어서 역사가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역사가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따라 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마천과 그의 「사기열전」은 카의 역사관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역사가가 역사의 주체로서 존재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으며, 최초의 역사가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특별한 역사가였던 셈이다. 사마천이 아니라면 그 누구라도 「사기열전」과도 같은 작품을 펴내지 못했을 것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