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모든 산과 모든 마을, 사람이 닿는 곳에는 전부 이야기가 있다
강원도는 엄연히 우리나라를 구성하는 팔도 중의 하나인 만큼, 한국사상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삼국시대에는 박혁거세가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을 쫒아간 장소이며, 후삼국시대에는 궁예가 태봉의 도읍으로 삼은 곳이고, 신라가 멸망한 후에는 마의태자가 활동했다는 전승도 있다. 이후에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묻히고, 불사이군을 내세운 고려의 마지막 충신들이 은거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율곡 이이를 포함해 수많은 선비를 배출한 지역이 바로 강원도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학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현재 강원도는 문화재나 유적이 아닌, 산과 자연경관 위주로 알려져 있는데, 강원도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예로부터 이름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의 단편적인 부분만 알려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점이다. 이에 저자는 강원도에 살면서 각 지역의 설화와 민담을 모으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인문학적 이야기를 종합해 이 책을 저술하였다.
책의 구성을 보면 전반적으로 「택리지」가 연상되며, 내용상으로도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다. 「택리지」는 제목을 해석하자면 사람이 살 곳을 정하는 책으로, 저자 이중환이 조선팔도를 유랑하며 한반도 곳곳의 지리와 기후, 산수와 역사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살기에 적합한 장소를 제시하는 책이다. 이중환 본인이 유랑생활을 하며 지어서 그런지 자신이 살 곳을 정하는 것처럼 신중하게 각지의 특징을 분석하였는데, 단순히 관찰한 결과만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지역에 전해내려오는 민담이나 역사적 기록도 참고해 왜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되었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였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는 「택리지」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마을의 이름이 왜 이렇게 지어졌는지, 이 지역의 사람들이 어떤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논리적 과정이 있어 설득력이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부분은 음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술지게미를 이용해 만든 술인 모주는 인목대비의 어머니인 노씨부인이 귀양을 가서 만들었다 하여 '대비모주'라 불렀던 것이며, 초당 순두부는 굶주리는 백성들이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본 허엽이 고안해 그의 호인 초당에서 딴 이름이고, 인절미는 피난가는 왕에게 임씨 성을 가진 백성이 바쳤다 해서 붙은 이름인 등 지금은 그저 맛있는 음식 취급을 받지만 그 속에는 백성의 삶이 깃들어 있다. 이름에서부터 옛이야기가 담겨있는 셈이다. 음식뿐만 아니라 마을의 이름에도, 산봉우리의 이름에도 제각각 이야기가 깃들어있으니 이 책은 강원도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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