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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역사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백승종

by omicron2000 2020.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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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줄의 글자일 뿐이지만, 문장 안에는 힘이 담겨 있다.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500년 조선사를 가로지르는 명문장 이야기『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한 장의 글로 누군가는 출세를 하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는다.” 글로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문인부터 새 시대의 문장으로 성리학 바깥세상을 꿈꾼 신지식인까지, 역사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구한 편지 한 장부터 붓을 꺾지 못해 고난을 자초한 절개 높은 상소문까지. 문장이 담은 시대의 풍경과 시대가 탄생시킨 문장가의 사연을 생생하게 복원한 수작으로 사람과 시대, 미시사와 통사를 아우르는 독보적 역사가 백승종 교수의 500년 조선사를 가로지르는 명문장 이야기이다. 조선 사람들은 어떤 문장을 좋아했을까? 조선의 문장가들이 추구한 미학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조선 500년을 관통하는 역동적인 문장의 역사와 그 행간에 숨은 조선의 풍경을 생동감 있게 그린다. 1부 ‘시대의 문장’에서는 여말선초의 전환기에 이색이 무거운 붓을 들어 제자와 정적에게 보낸 편지, 글로 새 나라를 설계한 경세의 문장가 정도전, 문장의 힘으로 국가의 질서를 확립한 세종과 그가 북돋은 실용적 글쓰기의 대가 권채와 박팽년을 통해 시대적 사명이 문장가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본다. 2부 ‘문장의 시대’에서는 훈구파의 거두이자 문단의 거장 서거정이 아내와 술잔을 기울이며 남긴 소탈한 한시, 옛 문인의 초상화를 벗 삼은 허균의 우정담, 난세를 외면하지 못한 문장가 권필과 백인걸의 피어린 상소문, 티끌세상을 버리고 유불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김시습,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과 유성룡의 절절한 우의, 한중 공동 프로젝트를 기획한 홍대용 등 문장에 실린 세상의 다양한 얼굴을 만난다. 시공을 초월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문장들은 인생의 나침반이자 의지처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
백승종
출판
김영사
출판일
2020.09.25

 조선은 가히 문장의 나라라고 부를 만하다. 조선이라는 국가의 통치 이념은 공자로부터 이어지는 유학, 그 중에서도 성리학이었는데, 공자가 선비의 덕목으로 글쓰기와 시짓기를 들었을 정도로 유학에서는 문장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문장가가 많이 나온 것이다. 통치계급인 양반들 대부분이 유학을 공부해 관직에 올랐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일상적인 대화나 여가에서도 명문장이 탄생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나 문장을 쓰는 것을 즐기다 보니, 문장을 보면 조선의 역사와 사회상을 엿볼 수도 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면서 서구에는 조용한 나라로 인식되던 조선이었지만, 사실은 건국부터 쿠데타에 의한 역성혁명이었고 안으로는 반란이, 밖에서는 침략이 빈번히 일어나는 나라였다. 따라서 조선의 역사를 보면 시대에 따라서 크게 요동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국 직후 혼란스러운 시기부터 시작해, 세종대에 이르러서는 제법 강력한 국력을 갖추게 되고, 마치 태평성대에 이른 듯했으나 양란이 일어난 뒤에는 폐허가 되어 버리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상과 학풍이 일어나는 식이다. 앞에서 말했듯 조선의 역사에서 문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이런 시대의 변화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분야도 다름아닌 문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적이나 책은 소실될 수 있지만, 명문장은 여러 사람의 책에도 언급되며 시대를 넘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은 이런 조선의 문장을 시대별로, 내용별로 모아 당시의 상황과 문장가의 심정 등을 분석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조선의 문장가가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막상 이 책을 펼치면 익숙한 이름이 많은 것에 놀랄 것이다. 역사 교과서만 보았더라도, 아니 역사 드라마만 챙겨 보아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 보았을 법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조선의 건국공신 정도전,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진 허균, 홍대용과 박지원을 위시한 실학자들이 그렇다. 그 외에도 「징비록」의 유성룡이나 추사 김정희, 매월당 김시습처럼 유명한 인물들이 많고,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성호사설」의 성호 이익이나 「기학」의 최한기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위인들이 이 책에 이렇게나 많이 실려 있다는 것은 조선에서 문장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증명한다. 그러나 아무리 익숙한 이름이라 해도, 역사책에서 본 모습과는 다르게 보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교과서에서 무미건조하게 업적만을 나열했다면, 그 사람의 문장에는 쓸 당시의 감정이 무엇보다 생생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감탄하는 내용이든, 무언가를 슬퍼하는 내용이든 감정을 실은 글은 그 자체로 문학적 가치를 지닌다.

 문장이 아무리 조선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해도 조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짧은 글이라면 무엇이든 문장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요즘으로 치자면 사람들이 SNS에 올리는 짤막한 문구가 조선시대의 문장을 계승한 격이라고 볼 수 있겠다. 계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쓰고 읽을 수 있다는 차이는 있지만, 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쓰고, 많은 사람에게 공개되는 등 조선시대의 문장과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꼭 SNS가 아니더라도 현대의 문장은 다양한 곳에서 찾을 수 있을 테지만, 저자는 그 중에서도 가짜 뉴스의 위험성에 주목한다. 조선시대야 양반들만 문장을 읽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읽을 수 있기에 거짓은 현대 사회에 더욱 위험하게 작용할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고전을 읽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온 문장가들만 보아도 이익이나 최한기는 실학자답게 비판적이고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는데, 이는 가짜 뉴스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이렇듯 명문장은 그 가치가 깊기 때문에 수백 년이 지나도 기억되고, 그런 만큼 우리는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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