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문학/역사

「메두사호의 조난」- H. 사비니, A. 코레아르

by omicron2000 2020. 4. 25.
728x90

다시는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메두사호의 조난
『메두사호의 조난』은 프랑스 화가 제리코가 그린 유명한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의 소재가 된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의 조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쓴 처절한 육필 생존기다. 두 명의 생존자를 통해 밝혀진 사고의 진상은 당시 프랑스 사회는 물론 서양사회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로 메두사호는 ‘무능한 공권력에 의한 재난’의 대명사가 되었다. 인류가 겪은 재난 가운데서도 참담함의 극에 도달한 이 사건의 실상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한다.
저자
H 사비니, A 코레아르
출판
리에종
출판일
2016.08.08

 1816년 6월, 프랑스의 로슈포르 항에서 세네갈의 세인트루이스 항을 향해 프리깃 '메두사'호가 출항했고, 항해 도중 풍랑을 만나 조난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메두사호는 몇몇 소형함들을 대동하고 항해중이었는데, 배가 파괴되고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몰리자 더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 배를 분해해 뗏목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뗏목을 타고 표류하는 선원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바로 유명한 <메두사호의 뗏목>이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이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열 명 남짓한 생존자들을 모두 찾아가 인터뷰하고, 실제 시체를 관찰한 끝에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노력에 걸맞게 해당 작품은 당시의 상황을 끔찍하리만큼 생생히 전달한다.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1819. 캔버스에 유화, 루브르 박물관 소장

 이 그림을 보면 수백 명이 타고 있던 대형함인 메두사호였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십여 명에 불과하고 커다랗던 뗏목도 망가져 언제 가라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땅을 보고 희망을 가지며 천을 흔드는 사람도 있으나 괴로워하며 팔만 겨우 뻗은 사람도 있고, 체념한 듯 주저앉은 사람도 있다. 거기에 뗏목 위에 남겨진 앙상한 시체들까지 더해지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가 그림을 넘어 느껴질 정도이다. 이렇게 그림만 두고 보면 단순히 거대한 자연재해를 만나게 되어 죽음의 고비를 겪은 이들로 보일 수도 있지만, 메두사호의 두 생존자, H. 사비니와 A. 코레아르의 기록인 「메두사호의 조난」을 통해 인재(人災)에 가까운 이 사고의 자세한 원인과 과정을 알 수 있다.

 「메두사호의 조난」에서 여러 번 강조되는 부분은 인간에 의해 상황이 악화되었으며, 근본적인 원인 또한 사람에게 있다는 점이다. 배가 풍랑에 휩쓸려 조난당하게 된 것은 무능한 선장과 장교들의 잘못된 항해로 인한 것이며, 배가 풍랑에 휩쓸린 후에도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 사고가 인재임을 보인다. 뗏목의 사람들은 식량을 더 실을 수 있는데도 몇 통을 바다에 빠뜨리고, 심지어는 편을 갈라 칼을 들고 서로 죽이기까지 하는데, 이런 과정이 불필요한 희생자를 더욱 늘렸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당시 메두사호의 선장은 일종의 낙하산 인사로 뽑힌 사람이었기에 생존자들의 귀환 후 정치적 논란이 생길 정도였다고 하니 근본적 원인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시의 인물들을 비난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부터 해상 조난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공포스러운 재난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이 경우는 특히나 규모가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예상치 못한 사고를 만나면 당황할 수밖에 없고, 이처럼 사람이 많으면 혼란 상태는 더욱 오래 진행되기 마련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안전설비나 구명 체계가 발달한 시기도 아니었으니, 대규모로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침착하고 이상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부당하다.

 「메두사호의 조난」에서 두 저자의 문체는 담담하다. 육지에 도착한 후 그들을 이송하는 도중 소지품을 훔쳐간 무어인들을 제외하면 누군가에게 특별히 공격적인 태도를 가지지도 않고, 그 무어인들마저도 이교도이기에 가지는 막연한 적대감에 가깝다. 그들은 이 사고가 누구의 탓이라고 말하지 않고 자신들이 겪은 상황이 얼마나 참담했는지와 자신들이 느꼈던 점을 묘사하는 데에 집중하였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 H. 사비니와 A. 코레아르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를 읽고 다른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