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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철학

「소피스트」- 플라톤

by omicron2000 202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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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하겠습니까?

 

소피스트

무엇이 혹은 누가 진정한 철학자인가?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소크라테스를 위한 변론이라면 『소피스트』는 소크라테스를 처형한 아테네 대중을 위한 변론 『소피스트』는 전날에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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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인들은 철학을 했다. 개중에서 특히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을 철학자라고 불렀다. 소피아는 지혜를 말한다. 필리아는 사랑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필로소포스, 즉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랑이 빠지고 지혜만 남은 소피스트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다. 현대적인 기준으로는 이들도 철학자라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이들을 철학자라 부르는 것을 거부했다. 소피스트들은 진리와 지혜의 탐구 대신 토론에서 이기는 법만 탐구했고, 이를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며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이 토론에서 이기는 법이란 "있지 않은 것은 있지 않다" 식의 궤변으로 입을 틀어막는 것이었기 때문에, 논리를 더럽히는 소피스트들은 철학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궤변으로 논리를 타파하는 것은 "흰 말은 말이 아니다"라고 우기던 중국의 명가 사상가들과도 닮았으나, 적어도 철학으로서 모순을 다루던 명가와 비교하면 속물적 이익(돈, 명성 등)을 위해 모순을 주장하던 소피스트들은 좋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반면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철학을 했다. 양쪽 다 상대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모순으로 몰아가며 논쟁했지만, 소피스트들은 진리를 부정해 상대를 자기모순에 빠뜨리고 토론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반면 소크라테스는 상대가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진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질문과 대답을 통해 지혜를 깨우치는 이런 과정을 산파술, 혹은 (헤겔의 것과 구분하기 위해) 소크라테스식 변증법이라 부른다. 그런데 정작 옛날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나 소피스트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목적은 둘째치고 방식과 패턴이 흡사한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플라톤은 책을 한 권도 쓰지 않은 소크라테스 대신 여러 권의 철학책을 썼는데, 대화문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을 대화편이라 부른다. 그리고 스승을 굉장히 깊게 존경하던 그는 대화편에 소크라테스를 곧잘 등장시켰고, 「소피스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가 등장한다. 그가 재판을 받은 후 토론을 열고 지켜보는 역할이다. 그 때문인지 「소피스트」는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은 소피스트가 아니었다면서 항변하는 책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 정확히는 소피스트와 철학자 사이에 분명히 선을 긋는 느낌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테아이테토스와 엘레아의 손님이다. 젊은 동명이인 소크라테스 등 다른 인물들이 나오기는 하나 주역은 이 둘의 대화다. 손님이 주도하며, 테아이테토스는 따라가는 형식이다. 토론의 주제는 소피스트이다. 더 정확히는 철학자, 정치가, 소피스트가 어떻게 다르며, 소피스트가 어떤 존재인지 정의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처음부터 소피스트에 대해 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낚시꾼의 예시를 먼저 든다. 낚시꾼은 일종의 사냥꾼이며, 동물을 사냥하고, 그중 헤엄치는 동물을, 그중에서는 물 속을 헤엄치는 동물을 사냥한다는 식이다. 이 사냥도 도구에 따라 더 구분될 수 있다. 어쨌든 이들은 소피스트가 언변으로 젊은이들의 돈을 사냥하는 사냥꾼이라고도 하고, 토론 기술을 파는 장사꾼이라고도 한다. 소피스트의 기술을 논할 때에는 모방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라고 결론내리는데, 여기에서 난관에 빠진다. 모방이라는 것을 정확히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 부분에서, 일행은 소피스트라는 주제로부터 잠시 벗어나 존재와 비존재에 대해 토론한다. 그리고 아버지격인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의 논증에 도전한다. 굉장히 어렵고 난해한 부분이지만, 이들이 내린 결론을 간단히 요약하면 거짓이라는 것도 어떻게든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소피스트는 모방의 기술을 가진 자이며, 잘 알고 있지 않은 대상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하는 식의 기술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이들이 결론내린 소피스트는 아래와 같다.

모순을 만드는 기술에서, 위장하는 기술에서, 믿음에 의존하는 기술에서 나온 모사자 그리고 유사 닮음을 만드는 종족에서, 모상 제작술에서 나와서 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을 제작하는 부분 그리고 말로써 볼거리를 만드는 부분으로 구분된 자,
바로 "이런 가계와 혈통으로부터" 진정한 소피스트가 나왔노라고 누군가라도 주장한다면,
그는 가장 진실된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직접 읽으며 분류의 과정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소피스트」에서 크게 난해한 부분을 둘 꼽자면 하나는 끝없이 둘로 나누는 분류이며, 다른 하나는 존재와 비존재의 논의다. 분류의 경우에는 새와 물고기가 모두 헤엄치는 동물이라 규정하는 등 시대에 따른 시각의 차이가 커서 왜 이렇게 분류하는가 싶은 경우가 굉장히 많다. 더구나 현대에 많이 사용하는 논증도 아니고, 양측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둘로 나누는 것 자체는 간단한 방식이니 보다 보면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런데 존재에 대한 부분은 정말로 어렵다. 이는 형이상학으로서도 충분히 난해한데, 해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어의 애매성 자체가 또 하나의 문제가 된다. 이 부분이 토론의 주제는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진실와 그 모방이라는 테마는 「소피스트」의 주제와도 같기에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소피스트가 철학자를 닮고, 젊은 소크라테스는 현자 소크라테스를 닮았듯, 원본과 모방의 관계는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온다.

 플라톤이 내린 결론에 의하면, 소피스트는 알지 못하는 자이기에 지혜가 없고, 그럼에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다고 믿어 거짓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이는 맨 처음 나온 주제인 철학자와 소피스트의 구분과도 이어진 내용이다. 플라톤이 철학자가 어떤 존재인지 이렇게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는 없지만, 이를 통해 유추하자면 철학자란 소피스트의 원본이 된다. 철학자는 아는 자이지만 알지 못하는 자인 소피스트가 이를 모사하기에 이들은 앎이 아니라 믿음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모순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철학자는 유사 닮음은커녕 모사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철학자는 '스스로 아는 자'이며, 이는 곧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았던 소크라테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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