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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철학

「논어」

by omicron2000 2020.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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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과 제자들의 좌충우돌 유학 탐구기

 
논어(슬기바다 1)(양장본 HardCover)
「슬기바다」 제1권 『논어』. 공자와 그 제자들이 세상사는 이치나 교육·문화·정치 등에 관해 논의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그 안에는, 공자의 혼잣말을 기록해 놓은 것과 제자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한 것, 제자들끼리 나눈 이야기, 당대의 정치가들이나 평범한 마을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공자와 그 제자들이 ‘토론한 이야기’라는 의미에서 《논어》가 되었다고 한다. 동양철학을 논함에 있어 가장 먼저 거론되는 양서 중의 양서로, 누구나 접하기 쉬운 내용이지만 인간 삶의 근본을 아우르는 이치를 다루고 있어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
공자
출판
홍익출판사
출판일
2015.10.15

 유학의 시조인 공자는 예수, 석가,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인류사에 중요한 성인으로 불리며, (공자는 成人이고 예수는 聖人이기는 하지만) 「논어」는 성경, 불경과 더불어 주요 종교의 경전으로 꼽힌다. 이들의 공통점으로는 종교의 경전을 본인이 쓰지 않았다는 것이 있는데, 소크라테스는 책을 쓰지 않아 제자인 플라톤이 쓰고, 성경은 예수의 제자나 그 제자 대에서 쓰였다고 추정되며, 불경은 석가의 제자 아난타가 기억한 내용을 토대로 추종자들이 집필했다고 전해진다. 「논어」도 마찬가지로 공자 본인이 아닌 제자들에 의해 쓰인 책이다. 공자는 술이부작이라 하여 과거의 시를 정리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자신이 직접 내용을 쓴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여러 제자들이 본명으로 불리는 반면 유약과 증삼만은 유자, 증자라는 존칭으로 불리기에 이 둘과 그 제자들에 의해 쓰였다고 추측된다. 누가 「논어」를 지었는지와는 별개로 「논어」는 다른 성인들의 경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있는데, 단순히 제자들이 기억하던 내용을 죄다 적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유학의 가르침과는 관련이 없는 일화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논어」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논어」가 유학의 기초 경전이기 때문인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한문으로 보면 분명 어려운 책이 맞긴 하다. 유학이 중국에서도 주요 사상이었던 만큼 역사적으로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데 분서갱유나 문화대혁명 등의 사고로 상당수가 소실되어 현재 전해지는 것은 몇 없다. 그런데 이 판본들마저도 시대에 따라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있고, 심지어 그중 고론(古論)이라 불리는 판본의 경우 고대 중국어로 쓰여 문맥이 난해하기 때문에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문으로 「논어」를 읽을 필요가 없다. 이미 시중에는 번역된 「논어」가 수도 없이 많이 있으며, 우리는 그중 적당한 책을 골라서 읽으면 되는 일이다. 실제로 번역만 되어 있다면 「논어」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데, 한 사상의 경전이라고는 하지만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니 선생님이 학생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적은 교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자의 화법이 직설적이지 않았다는 점만 감안한다면 다른 철학서보다 오히려 쉽게 다가올 것이다.

 「논어」를 읽을 때 주목해야 할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공자가 위대한 인물인 것은 맞지만 사실 그도 한 명의 인간적인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나 부처같은 종교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에 항상 숭고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심지어 제자들이 유학과 관련이 없는데도 「논어」에 수록한 일화가 제법 많아 그중 일부는 웃음이 나올 정도이다. 그 예로, 공자는 키가 거의 2m에 육박하는 거구였다고 전해지는데 (9척 6촌. 당시 도량형의 기준을 따르면 한 척이 약 23cm 정도로 2m가 족히 넘지만 지역에 따라 길이의 단위가 달라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시대를 감안하면 대충 2m보다 약간 모자랄 듯한데 그냥 키가 큰 편이었다고만 이해하는 편이 좋다.), 하루는 제자들과 유랑하던 중 잡혀서 억류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얼마 뒤 무사히 풀려났지만 잡혔던 이유를 알아보니 도적이라 생각해서 그랬다는 것으로, 거구의 사내가 한 무리의 장정들을 이끌고 오니 그렇게 생각했을 법도 하다. 이렇듯 「논어」에는 딱히 가르침도 없고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이야기가 많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논어」의 모든 구절이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므로 이런 부분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면 유학의 이해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단지 경전에 있다고 해서 모든 구절이 그 사상의 핵심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근본주의적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이는 「논어」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경전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종합하자면 공자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기에 「논어」의 모든 구절이 의미 있는 문장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무려 2500년 전에 쓰인 책인 만큼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공자가 그런 말을 했구나'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두 번째로 주목할 점은 공자가 사람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의 태도이다. 공자가 제자를 양성한 학교는 춘추전국시대 여러 나라의 재상을 배출했을 정도로 유명한 기관이었는데, 어찌보면 대학의 기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논어」를 읽다 보면 철학자나 사상가로서의 공자 대신 교육자로서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안회와 자공을 대하는 태도이다. 후대에 존경심을 담아 '안자'라고도 불리는 안회는 공자가 자신보다 낫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제자였다. 머리가 특별히 좋다거나 영특한 것은 아니지만, 홀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가난한 청년임에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그 효성이 지극해 산적조차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자공은 그와는 정반대의 인물로, 안회가 인성으로 존경받았다면 그는 언변과 높은 지능으로 인정받았다. 한 나라의 재상이 되어 많은 부를 쌓기도 하였을 정도였지만 공자는 안회보다 그를 낮게 보았다. 아마 머리가 좋다 하여 자만하는 것을 경계해 그런 것으로 보인다. 자공도 스승의 마음을 알았는지, 공자가 둘을 비교하는 말을 하자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이니 어찌 그에게 비하겠습니까'라는 말도 했다. (이 말을 들은 공자의 대답은 '잘 아는구나! 우리 모두 그에게 비할 바가 못 된다'였다.) 공자가 스승으로서 지나친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공자 사망 후 자공은 다른 제자보다 몇 배는 길게 무덤을 지켰다는 것으로 보아 스승에 대한 존경심도 남달랐나 보다.

 공자는 유학을 가르칠 때 배우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같은 질문을 해도 다른 답을 주었다. 안회처럼 이해력이 좋은 제자에게는 깊고 심오한 답을 주고, 수레를 끌던 번지에게는 꾸지람을 하기도 했다. 증삼처럼 뛰어난 제자는 '나의 도는 하나로 관통한다 吾道一以貫之'는 한 마디만으로도 공자의 뜻을 이해했다. 낮잠을 자던 재여를 보자 '썩은 나무로 조각을 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담장을 고칠 수 없다.'면서 어찌 그를 꾸짖겠냐며 지나간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제자의 특성에 맞추어 그에 맞는 가르침을 준다는 점은 바람직한 교육자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유학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왕과 제후들에게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거나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습니다 獲罪於天 無所禱也'라고 잘못되었음을 말한 적도 있다. 모친상에 슬퍼하지도 않는 버릇없는 친구 원양을 때린 적도 있긴 한데, 친한 친구라서 가볍게 치며 책망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어려서부터 예의가 없었다며 평소에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해석도 있고, 이 구절은 다소 해석이 갈린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의 경험을 그대로 담은 책일 뿐 철학책을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학에 의미가 큰 구절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내용도 많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단지 불필요한 분량이라고는 할 수 없고, 오히려 성인 공자가 아닌 인간 공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유학이 더 쉽게 다가오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기존에는 단지 위대한 사상가로서의 공자만 접할 수 있었다면, 공자 본인과 가장 가까운 책인 「논어」를 통해서 훌륭한 스승이자 조언가로서의 공자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앞에서 반복적으로 말했듯 「논어」는 그 내용이 어려운 책은 전혀 아니기 때문에 '논어를 해석하는 책'을 읽는 것보다는 「논어」 그 자체를 읽는 편이 낫다. 번역 자체가 어느 정도 번역자의 주관이 반영되는 작업이기는 하지만, 그 문장에 대한 해석만큼은 독자 본인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논어를 해석한 책을 읽는 것은 공자가 아닌 그 사람의 철학을 배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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