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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순수문학

「귀여운 여인」- 안톤 체호프

by omicron2000 2022.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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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던 여인

 

귀여운 여인

체호프 문학의 절정을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 / 순진하고 따스하고 밝은 올렌카는 옆에 있으면 저절로 따라 웃게 만들고 기분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고, 친절하고 헌신적인 여성스러움의 전형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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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여운 여인」은 제목 그대로 귀여운 여인인 올렌카가 살아오면서 세 명의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 이야기이다. 그녀의 첫 번째 사랑은 쿠킨이라는 극장 지배인이었다. 이 둘은 부족함 없이 사랑했는데, 쿠킨이 모스크바에 출장을 갔다가 그만 사망하고 만다. 쿠킨의 부고를 받고 나서 얼마 뒤 그녀는 푸스토발로프라는 상인과 가까워지나, 얼마 되지 않아 그 또한 병으로 떠나보내고 만다. 그녀가 세 번째로 반한 사람은 수의사 스미르닌으로, 그는 결혼까지 한 몸이었지만 아내와 별거하고 있었다. 그는 올렌카의 곁을 떠나 모스크바로 갔다가 몇 달 후 돌아왔는데, 올렌카는 스미르닌 가족에게 자신의 집에서 지내는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그녀는 스미르닌의 아내와 아들까지 함께 살게 되었고, 그 아들 사샤를 마치 자신의 아들인 것처럼 여기는 것으로 작품은 끝이 난다.

 올렌카는 굉장히 의존적인 주인공이다. 마치 다른 남자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존재하는 의미가 없는 사람인 양, 계속 다른 남자에게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그녀가 첫 사랑인 쿠킨에게 반한 것이 아버지의 사망 이후라는 점이 중요한데, 사랑의 범위를 조금 넓히면 아버지와 사샤까지 그녀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올렌카는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자 쿠킨을, 쿠킨을 사랑할 수 없자 푸스토발로프를, 푸스토발로프를 사랑할 수 없자 스미르닌을, 스미르닌을 사랑할 수 없자 사샤를 사랑하게 된 것이며, 세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의 남자를 사랑했던 것이다. 사실상 인생 전부를 다른 남자를 사랑하며 보낸 셈이다. 이는 결혼하기 전에는 딸로서, 결혼한 뒤에는 아내로서,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어머니로서만 기억되는 전근대적인 수동적 여성상을 연상시키기도 하나, 올렌카는 스스로 사랑에 빠져 이 길을 선택하였다는 점에서 오히려 능동적인 인물이자 사랑의 주체다. 그녀가 남성에게 의존한 것은 단지 그를 사랑해서지 그녀가 나약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올렌카가 짧은 기간 동안 사랑을 네 번이나 바꾸었다는 점에서 사랑을 가볍게 여기거나 사랑의 탈을 쓴 쾌락만을 원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정반대로 사랑을 무겁게 여기는 사람이다. 육체적 관계를 가졌다는 묘사도 없으며, 쿠킨이나 푸스토발로프가 죽었을 때 슬퍼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단지 죽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보다 새로 만난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 컸던 것뿐이다. 그녀의 사랑이 육체적 사랑이 아니라는 것은 스미르닌 가족을 집에 들이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 집을 기꺼이 스미르닌에게 제공하며 자신은 별채에서 지내도 좋다고 말하는데, 이는 순전히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다.

 또 다른 주목할 점은 마지막 사랑이 사샤라는 점이다. 그녀가 사샤를 아들처럼 아껴 주는 대목에서는 뚱뚱한 아줌마라는 언급이 있는데, 이 시점에서 '귀여운 여인'이었던 젊은 시절의 모습은 사라졌다. 하지만 외모가 사람의 전부가 아니듯이, 그녀는 외모를 잃고서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얻었다. 애인에 대한 사랑이 아닌 아들에 대한 사랑, 즉 모성애다. 그녀가 지금까지 모성애를 자각하지 못했던 것은 앞에서 말했듯 쿠킨이나 푸스토발로프와 육체적 관계를 갖지 않아 아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아이에 모성애를 느낀다는 것이 의아할지도 모르나,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의 아이라면 애정이 생기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올렌카는 진심으로 상대를 사랑했던 것뿐이나 그녀의 의존성은 부정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사샤만 해도 어머니가 아니면서 어머니처럼 간섭하는 그녀를 거부하며, 스미르닌에게는 손님이 왔을 때 수의학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대답은 그럼 무슨 말을 하냐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견이랄 게 존재하지 않고 남성에게 종속된 것처럼 사는 것이다. 본인이 선택한 것이고 스스로 행복해하기에 이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의존적인 것이 상대에게도 좋지 않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녀의 사랑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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