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콘트라베이스, 최고이자 최악의 악기가 아닌가!

콘트라베이스

 「콘트라베이스」에는 사람이 단 한 명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연극 형식이라 남자의 말을 듣고 있는 청자, 즉 '당신'도 소설의 등장인물이기는 하나, 말 한 마디도 없는 당신은 연극의 배우보다는 관객에 가깝다. 즉 「콘트라베이스」는 본질적으로 한 남자의 모노드라마이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국립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를 맡은 연주자이다. 따지고 보면 공무원인 셈이고, 본인도 인정하듯 꽤나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에게는 크나큰 고민거리가 있다. 바로 자신의 악기 콘트라베이스 때문이다.

 남자와 콘트라베이스 사이의 애증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락 밴드 하나를 생각해 보자. 보통은 공연에서 가장 돋보이는 보컬리스트와 기타리스트가 굉장히 인기가 많다. 이들은 소리도 크고, 퍼포먼스도 강렬하고, 무대의 맨 앞에 있어서 눈에도 잘 띈다. 드러머는 무대 뒤에 있지만 악기가 확실히 다르고 소리가 커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데, 베이시스트는 유독 인기가 없다는 인식이 있다. 폴 맥카트니처럼 인기 있는 베이시스트도 얼마든지 있지만, 베이스 혼자 연주한다고 음악이 되는 것도 아니다보니 베이시스트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 콘트라베이스 또한 마찬가지다. 낮은 음을 낸다는 점부터 무대의 뒤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까지(콘트라베이스는 무척 커서 눈에 띄긴 한다.) 둘은 꼭 닮았다. 아니, 전반적으로 오케스트라와 밴드가 비슷하다. 필요할 때는 독주도 하며 많은 사람의 이목을 한눈에 끄는 기타리스트는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이고, 드러머는 오케스트라의 타악기(퍼커션)이다. 그러니 「콘트라베이스」는 인기 없는 베이시스트가 베이스 기타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인기가 없는 것을 악기 탓을 하며 푸념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남자는 세라라는 이름의 소프라노 성악가를 마음에 두고 있다. 그녀에게 고백하고픈 마음은 굴뚝 같으나, 그녀가 한낱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를 알아볼 이유도 없고 그녀는 다른 남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을 것이기에 섵불리 고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 번은 의도적으로 음악을 망쳐 눈길을 끌어 볼까 했으나, 이내 연주자로서 하지 못할 짓이라는 생각에 반대로 인생 최고의 연주를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세라는 그의 영혼이 담긴 연주를 눈치채지 못했다.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돋보이면 얼마나 돋보이겠는가. 이러니 남자가 콘트라베이스를 혐오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그는 처음에는 오케스트라에 있어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지만 중반에 이르러서는 세라의 이야기를 하며 콘트라베이스가 세상 최악의 악기라고 주장하는 데에 이른다. 짝사랑에 괴로워하던 그는 작품의 막바지에 다음 공연에서는 연주 도중에 세라의 이름을 외칠 것이라 말하며 집을 나서고, 연극은 끝이 난다.

 「콘트라베이스」는 남자의 입담과 그 내용만 해도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소심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애먼 악기에게 화풀이하는 것도 웃기기만 하다. 그런데 이 책의 진짜 특별한 점은, 한 사람이 콘트라베이스 하나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한 작품이 완성된다는 점이다. 세라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바그너는 과대평가되었다거나, 모차르트는 단지 운이 좋았던 것뿐이라는 등 백여 페이지를 별에 별 소리로 채운다. 그럼에도 이 내용과 감정 표현이 억지스러운 느낌 없이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듯 자연스럽다. 이는 순전히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필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사만으로 인물을 창조하고, 생명을 불어 넣는 능력 말이다. "이 남자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저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위의 문장 하나 없이, 인물을 완벽히 묘사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