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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순수문학

「끓인 콩의 도시에서」 - 한유주, 오혜진

by omicron2000 2021.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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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는 소설은 작가의 경험을 담는다

 

끓인 콩의 도시에서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즐기는 각기 다른 모양의 이야기!2030세대를 대표하는 소설가와 일러스트레이터의 단편 소설 시리즈 「테이크아웃」 제14권 『끓인 콩의 도시에서』. 소설 형식에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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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벵갈루루, 혹은 벵갈로르는 인도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전설이 하나 있다. 먼 옛날 사냥을 떠났던 왕이 숲속에서 길을 잃어 지치고 피곤할 때, 한 노파가 그에게 끓인 콩을 대접하였고, 왕은 이 은혜를 기억해 그 지역을 '끓인 콩의 도시'라고 이름지었다는 것이다. 이 전설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목을 여기에서 따왔다는 것은 명백하다. 작품이 벵갈루루 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해 벵갈루루 공항을 떠나는 것으로 끝나기에 말 그대로 '끓인 콩의 도시에서' 있었던 일을 다루기 때문이다.

 작품의 화자는 소설 작가이다. 그는 '토탄의 추억'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고 있는데 그 주인공 또한 작가이다. 일반적으로 문학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에 작가인 등장인물을 등장시킬 때에는 본인을 투영하는 경우가 잦은데, 「끓인 콩의 도시에서」의 경우 이것이 두 번 반복되는 셈이다. 그 때문인지 한유주 작가, 「끓인 콩의 도시에서」의 화자, 「토탄의 추억」의 주인공은 모두 해외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작품 자체가 저자의 해외 여행 경험에 기반해서 쓰였으며, 이 작품의 화자는 벵갈로르에, 그리고 「토탄의 추억」의 주인공은 아일랜드에 있으니 말이다. 「토탄의 추억」의 주인공은 더블린에서 개최된 국제 문학 행사에 참여했는데, 「끓인 콩의 도시에서」의 화자 또한 더블린 대사관에 다른 작가들과 함께 초대받은 적이 있다고 언급되니, 저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 세 작가들의 행적은 마치 돌림노래와도 같이 이어져 어디까지가 「토탄의 추억」이고 어디까지가 「끓인 콩의 도시에서」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이 작품에서 인상깊게 나오는 소재로는 커피가 있다. 화자는 벵갈루루 말고도 아일랜드와 이탈리아를 여행한 경험이 있고, 각 여행지마다 커피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식사 자리 어색한 분위기의 해소를 의미하는 커피가 나왔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아메리카노 대신 마신다는 커피를 제공받았다. 벵갈루루에 머물 때에는 툭하면 커피를 마실 정도였다. '끓인 콩의 도시'에서 끓인 콩은 끓는 물을 커피콩에 통과시켜 만드는, 커피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그렇기에 커피를 주요 소재로 사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에 어울리지 않게 화자는 어디에서나 똑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스타벅스의 커피를 좋아하는데, 이는 그에게 있어 여행이 일상과 다르지 않다는 반증인 듯하다. 

 「끓인 콩의 도시에서」는 글도 그림도 굉장히 실험적인 작품이다. 가벼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듯, 화자의 생각이 과거와 현재 시점을 넘나들며 여과 없이 연속적으로 나타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고, 일러스트 또한 단편적인 장면을 흑백의 노이즈가 낀 화면에 담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양쪽 다 어느 방향으로나 주류라고는 할 수 없는 방식이나, 이 둘이 만나 독특한 조화를 이루어 냈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시도는 단순히 실험적인 것을 넘어 도전적인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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