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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순수문학

「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by omicron2000 2021.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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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것은 사람뿐, 유품 자체는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침묵 박물관

"육체를 잃은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살아 있었다는 단 한 가지 증거,?그 증거를 고요히 감싸 안는 침묵 박물관이 열린다아쿠타가와상, 서점대상, 다니자키준이치로상, 요미우리문학상 등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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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박물관 기사인 주인공에게 특이한 의뢰가 온다. 여느 의뢰와 마찬가지로 박물관을 만드는 의뢰였지만, 그 전시물이 문제였다. 마을에서 죽은 사람들의 유품을 모아 전시하는 '침묵 박물관'의 의뢰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당하게 받거나 구매한 유품이어서는 안 되고, 필요하다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시할 유품을 고르는 기준은 단 한 가지였다. 존재만으로도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 의뢰인은 양딸인 어린 소녀와 함께 사는 노파로, 그녀는 자신이 어릴 때 우연히 정원사의 죽음을 목격하며 충동적으로 가위를 집었고, 이것이 첫 번째 유품이었다 말한다. 이런 식으로 모아 온 유품이 많아지자 박물관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주인공을 불렀고, 그리하여 노파의 저택에 딸린 마구간을 박물관으로 개조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노파는 주인공에게 박물관을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그녀가 지금까지 맡아 해오던 유품 수집도 맡긴다. 사람들의 귀를 자르는 불법 시술을 하던 의사의 매스, 수도자가 걸치고 다니던 털가죽, 병원에서 사망한 노인의 의안, 홀로 죽은 예술가의 물감통 등이다. 물론 이 중 어느 것도 쉽게 얻을 수 없었다. 유품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건물에 몰래 숨어드는 것은 물론, 잠겨 있는 선반을 따고 시체를 만지는 일도 서슴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유품 수집이 아니었다. 분명히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지만 갑자기 폭탄이 터져 소녀가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젊은 여성을 죽이고 유두를 도려내는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주인공은 이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의 유품도 구하려 하나 오히려 형사들에게 범인으로 오해받기까지 한다. 거기에 더해 주인공이 형에게 보낸 편지는 답장조차 없어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중반부에선 이렇게 여러 사건이 발생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지만, 책의 최후반부에서 모든 진실이 드러난다. 폭탄을 터뜨린 사람은 체포되었고, 주인공의 형은 사실 죽어서 연락이 끊겨 있었다.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박물관 일을 돕던 솜씨 좋은 정원사였으며, 정원사가 주인공에게 준 잭나이프와 같은 칼로 피해자를 죽이고 유두를 잘라냈기에 형사들이 주인공을 의심했던 것이다. 그는 피해자들의 유품으로 잘려나간 유두가 적격이라 생각했음에도 이를 구할 수 없어 헝겊 등으로 대체했는데, 어느새 박물관에는 유두가 전시되며 정원사가 범인이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이렇게 모든 진실을 깨닫게 된 그였지만, 정작 정원사를 경찰에 신고하거나 비난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정원사가 박물관의 작업을 많이 도와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유품 수집 자체가 불법적인 일이라 경찰과의 접촉을 꺼린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침묵의 전도사에게 이를 말함으로써 함구할 뿐이다. 그리고 얼마 뒤 노파는 사망하고, 박물관은 주인공의 형과 노파의 유품을 전시하며 개장한다.

 죽음에 대한 고찰은 인류 역사상 수도 없이 이루어졌고, 누구나 한 번씩은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만 「침묵 박물관」은 특이하게도 박물관이라는 소재를 죽음에 접목시켰는데, 이 둘은 언뜻 보면 동떨어진 듯하면서도 묘하게 관련이 있는 개념이다. 박물관과 죽음의 관련점으로는 박물관에 전시되는 화석이나 유물이 대개 죽은 생물이나 사람의 것이라는 점이 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는 폼페이 유적지는 수많은 사람이 죽은 화산 폭발의 현장이기도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죽음은 사라지고 잊히는 과정인 반면 박물관은 잊지 않기 위한 공간이라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의 물건은 그의 인생에서 아무리 중요했다 하더라도 박물관에 전시하지 않는다. 보관해서 기억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노파의 침묵 박물관은 이 모순적인 두 소재를 접목시켜 마을의 모든 사람들의 유품을 전시하기로 한다. 이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죽음의 보편성과 기억을 위해 보관한다는 박물관의 취지를 접목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박물관에 대한 철학은 박물관 기사인 주인공도 작중에서 언급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침묵 박물관에 유품을 전시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유품을 보러 박물관에 오는 사람도 많지 않을 듯하고, 박물관을 지어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남기고자 한 노파도 죽었는데, 그럼 그 의뢰를 들어줄 필요가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누군가의 죽음이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인은 죽었을지언정, 그 유품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주인공의 어머니의 유품이었던 「안네의 일기」를 생각해보자. 「안네의 일기」는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나치의 감시를 피해 숨어 살던 시절에 적은 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안네가 죽은 뒤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책으로 출판되어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인공은 이 책을 자신의 어머니의 유품으로 삼기까지 한다. 안네 프랑크의 유품이나 다름없던 일기가, 다른 누군가의 유품이 되면서 이어진 것이다. 형의 유품 현미경은 주인공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정원사의 조부의 유품 정원 가위는 노파가 박물관을 만들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사람은 죽었을지언정, 그가 남긴 유품과 기억은 살아서 다른 사람에게 영감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인공과 소녀는 노파가 죽은 뒤에도 노파의 유지를 받들어 박물관을 운영한다. 노파의 유품으로 전시된 물건은 달력이었으나, 노파가 남긴 실질적인 유품은 박물관 그 자체인 셈이다. 이 마을의 특산품이자 책의 표지에도 그려진 알 공예품 또한 마찬가지다. 알껍데기는 살아 있는 새가 아니라 죽어있는 껍데기일 뿐이지만 공예품으로 재탄생하며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니 말이다. 박물관의 이름은 침묵 박물관인데 침묵하는 것은 오직 죽은 사람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한 유품들은 언제까지나 살아 숨 쉬며 대화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이를 듣기만 한다면 죽었던 사람도 죽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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