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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순수문학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by omicron2000 2020.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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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구 행복동의 비참한 사람들(Les Misérables)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난장이로 상징되는 못 가진 자와 거인으로 상징되는 가진 자 사이의 대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우리시대의 불행과 행운, 질곡과 신생의 역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1978년 초판을 발행한 이후, 최인훈의 광장과 더불어 100쇄를 넘어선 작품이다. 저자는 왜소하고 병신스런 모습의 '난장이'를 통해 산업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의 허구와 병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할 꿈과 자유에의 열망을 보여준다. 표지는 판화가 이철수 씨의 판화로 꾸몄다.
저자
조세희
출판
이성과힘
출판일
2000.07.10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이름만 들어도 낙원에 행복이라니, 정말 멋진 곳일 것만 같으나, 이곳은 사실 서울에서 가장 비참한 인물들이 사는 장소다. 가난으로 인해 꿈을 이루지 못하고, 가족이 모두 일을 해야 간신히 먹고 살 수 있으며, 사회에서 인정받지도 못하는 도시 빈민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심지어 그들은 집까지 잃고 말 위기에 처하게 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행복동의 여러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총 12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이다. 이러한 구조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여러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며, 등장인물이 많은 것이 아님에도 군상극의 느낌을 준다.

 기본적인 주제는 재개발로 밀려나는 도시 빈민들의 비참한 삶이다. 이 책의 주인공격인 '난장이' 김불이는 노비 집안의 사람이나, 신분제가 철폐된 뒤 다시는 노비가 되지 말라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삶은 노비의 삶에 비해 결코 낫지 않았다. 적어도 먹을 것과 살 곳 걱정은 없었을 그의 조상과는 달리, 그의 가족은 늘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살지 고민해야만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그는 서커스단에 들어가려고도 하는데, 광대 역시 조선시대에는 노비와 같은 천민이었다. 결국 양반과 천민 대신 돈으로 나뉘었을 뿐인 신분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노비라는 신분이 자손에게 대물림되었던 것처럼, 그의 가난도 영호, 영수, 영희가 물려받게 된다. 분명 40년도 더 전에 쓰인 책이지만, 가난의 대물림과 돈으로 신분이 나뉘는 것은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지적하는 바이다.

 제목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김불이가 달나라로 간다면서 말했던 쇠공을 의미한다. 지섭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별안간 달나라로 가 망원경 렌즈를 관리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 하고, 이를 믿지 못하던 영호에게 자신이 쇠공을 하늘로 쏘아서 보여주겠다 말한다. 여기에서 달나라는 당연히도 (낙원구와는 다르게) 말 그대로의 낙원과도 같다. 난장이인 그조차 망원경을 관리한다는 번듯한 일을 할 수 있고, 그곳에서는 더이상 비참한 삶을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김불이에게 있어 유토피아나 다름없는 곳이지만, 유토피아라는 단어에는 그 자체로 '이 세상에 없는 장소'라는 뜻이 담겨 있다. '달나라'라는 표현도 일상생활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장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는 후반부에 나오는 김불이의 죽음에 대한 암시나 마찬가지다. 그는 결국 굴뚝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건물에서 가장 높은 곳이자 달과 가장 가까이 있는 굴뚝이라는 점에서 이상과 현실이 더욱 대비되는 효과가 있다. 현실에 대한 비관, 그리고 자신과 가족이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또 다른 비관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처음 출판되었을 때 대단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금서로 지정된 적도 있었을 정도로 당시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기 때문이다. 모든 글은 그 작가가 살아온 시대와 그 글이 쓰인 시대를 반영하는 법이다. 이 책의 경우에는 저자가 취재를 하던 중 철거반원들에게 저항하는 주민들을 보고 이를 계기로 집필했다 전해지는데, 그러니 70년대의 재개발 열풍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현재까지도 곳곳에서 재개발이 이루어지며 이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도 여전히 있다는 것이다. 처음 책이 쓰인 70년대와는 그 양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저자가 괴로움을 표할 정도로 이 책에 공감하는 사람은 아직 많다. 우리 사회가 완전히 성숙해질 때까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가지는 가지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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