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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순수문학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by omicron2000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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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이 세계에 내던져진 사람일 뿐이오.

 

시골의사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카프카는 또렷하게 우리 눈앞에 펼쳐 놓는다. 행운은 곧 불행이고 얻음은 곧 빼앗김이다. 환자를 죽음에서 구할 수 없는 의사, 집으로 돌아가려고 마차를 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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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한 환자가 있다고 하여 시골의사는 찾아가려 하나, 말이 없어 출발할 수 없었다. 그러자 쓰지도 않던 우리에서 마침 마부가 나타나 말을 흔쾌히 내준다. 의사는 마부가 자신의 하녀 로자를 노린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로자를 뒤로 한 채 환자를 향해 출발하고, 마차는 눈깜짝할 새 도착한다. 그곳에는 부상입은 청년과 그의 가족이 있었는데, 의사가 보기에 청년의 상처가 별 것 아닌 듯해 돌아가려 하자 그의 가족이 떠나지 못하게 막는다. 가족의 부탁으로 다시 환자를 진찰하자 이번에는 심각한 상처를 발견한다. 청년을 도울 수 없을 것이라 직감한 그는 거짓말로 청년을 안심시킨 뒤 집으로 돌아가며,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한다.

 기본적으로 의사라는 직업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모든 병과 상처를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는 의사가 자신을 치료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나 유능한 이미지를 가진 의사지만, 「시골의사」의 의사는 그 정반대이다. 그는 청년에게 상처가 없다고 진단했다가 다시 보니 심각한 상처를 발견하고, 그를 치료할 수조차 없었던 무능한 인물이다. 마치 자신이 원해서 의사가 된 것도 아닌 듯하다. 「변신」의 그레고르가 원해서 벌레가 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 피투성(被投性)이 바로 카프카 문학의 핵심이다. 의사는 본문 중에서 대놓고 '내던져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까지 한다. 의사뿐만 아니라 로자도, 청년도, 그의 부모도 그저 이런 상황에 놓여 있을 뿐인 사람들이며, 의사는 그들 중 어느 누구의 삶도 구할 수 없었다. 그 또한 세상에 '내던져진' 사람 중 하나이니 말이다. 그 뒤에 일어나는 일도 마찬가지로, 이들이 세상에 내던져진 이상 로자는 마부에게 겁탈당하고, 청년은 상처로 인해 죽으며, 부모는 아들을 잃고, 의사는 이 모든 것을 후회한다는 행동 자체가 이들에게는 고정된 운명과도 같다.

 하이데거 철학에서 처음 나타난 피투성은 이후 실존주의 철학의 토대가 되었으나, 「시골의사」는 피투성이라는 개념에 기반하면서도 실존주의에는 전혀 닿지 않고, 극단적으로 무기력하고 허무주의적이다. 일례로 작중에서 청년의 부모는 의사의 옷을 벗긴 뒤 청년의 침대에 억지로 눕혔는데, 이는 그들의 미신에서 기인한 행동일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치료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나, 정작 의사의 현대 의학도 그를 구할 수는 없었다. 이는 과거부터 현대까지의 지식을 동원해도 카프카를 무기력에 빠지게 한, 자신이 세상에 '내던져졌다는 사실'만큼은 극복할 수 없었다는 의미인 듯하다. 시골의사는 카프카의 분신이다. 다른 인물들은 의사만큼 무기력함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스스로가 '내던져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의사는 왜 청년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짓말로 그를 안심시킨 것일까? 그는 스스로가 '내던져졌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는 것은 자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세상에 내던져진 모든 사람들에게 카프카가 베풀 수 있는 최후이자 유일한 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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