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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순수문학

「영혼의 비행」- 리처드 바크

by omicron2000 2022.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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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동안 만나는, 나의 꿈이 실현되는 곳

 

영혼의 비행

<갈매기의 꿈> 저자의 신작소설. 경비행기 <파이퍼 컵>을 조종하는 리처드 바크는 비행기 창문의 걸쇠라든지 기름 탱크 마개 같은 부품 문제로 곤란을 겪는다. 그럴 때마다 잠에서 깨어나면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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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매기의 꿈」의 작가로 유명한 리처드 바크의 소설이다. 해당 작품이 갈매기의 비상(飛上)을 다루는 것처럼, 저자 본인도 비행에 대한 열망이 상당한 사람이다. 그는 젊을 적 공군에서 파일럿으로 근무한 것은 물론, 비행에 관한 소설과 수필을 수 차례 저술하고, 지금도 비행기 여러 대를 소유하고 있는 비행기광이니 말이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지만, 「영혼의 비행」도 마찬가지로 비행기와 관련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책이 특이한 점은 주인공이자 화자가 리처드 바크 본인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이름만 같은 것이 아니라 비행기 조종이 취미라는 점까지 동일한, 사실상의 동일인물이다. 작가가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 「영혼의 비행」 최대의 특징이며, 이 때문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수필과도 같은 독특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처음 읽을 때에는 조금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이는 「영혼의 비행」이 리처드 바크가 다른 세계에 방문하는 이야기이며, 이것이 중반부에 들어서야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판타지적인 설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가 방문한 곳은 선더스 빅슨이라는 회사로, 이곳은 항공기 컨설팅 등 비행기와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다루는 기업이다. 시점은 리처드 바크의 세계보다 과거인 1923년(이 책은 2000년에 발표되었다.)이지만 바크의 세계와 시간이 똑같이 흐르지는 않는, 여러 모로 특이한 곳이다. 이 장소는 비행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꿈을 통해서만 찾아올 수 있는데, 바크의 경우 자신의 경비행기 파이퍼 컵을 개선할 방법을 고민하다 불현듯 영감을 떠올리는 식으로 이곳을 처음 접했다. 바크가 선더스 빅슨의 첫 고객은 아니며 다른 시대의 다른 사람들도 이곳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고, 그 중에는 선더스 빅슨 사에서 본 비행기를 따서 현실에서 비행기를 설계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바크는 모방이 아니냐고 따지나, 선더스 빅슨의 직원은 비행기의 설계는 발명이 아닌 '발견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바크가 이 세계에서 겪은 일들은 꿈이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갈매기의 꿈」이 직관적이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책의 주제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선더스 빅슨 사에 대한 한 가지 가설을 세워 보자면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바크와 같은 수많은 비행기 마니아들이 꿈꾸는 이상향이 형상화된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비행기 마니아들의 천국과도 같다. 초반에 바크가 자신의 파이퍼 컵을 스스로 개량하는 것처럼, 엔지니어나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비행기에 대한 애정만 있다면 누구나 설계나 수리를 할 수 있는데, 선더스 빅슨 사는 이곳을 찾아오는 (= 비행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영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간혹 예술가들이 황홀경을 보고 그 모습을 작품에 담는다고 하듯이, 고대 그리스의 예술가들이 뮤즈에게서 받은 영감을 작품으로 만들었듯이 선더스 빅슨은 항공기 마니아들의 뮤즈요 컨설턴트인 셈이다. 설계는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로, 영감은 비행기에 애정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을 담은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뛰어나서 훌륭한 설계를 한 것이 아니라, 마침 나에게 영감이 찾아왔을 뿐이라는 겸손함의 표시가 되는 것이다.

 「갈매기의 꿈」의 원제가 「Jonathan Livingston Seagull」이었던 것처럼, 「영혼의 비행」도 원제와는 큰 관련이 없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이 책의 원제는 「Out of My Mind」이다. 본래 영어에서 out of one's mind라고 하면 누군가가 제 정신이 아니라는 뜻인데, 여기에서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현실이 아닌 꿈속의 이야기이므로 말 그대로 내 정신 밖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원래 의미처럼 미쳐서 헛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예술가들 중에서는 마약 등을 통해 정말로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저자가 아직까지 정상적으로 지내는 것으로 보아 아마 전자의 의미를 의도했을 것이다.

 리처드 바크와 같은 비행기 마니아들에게는 선더스 빅슨 사가 영감의 원천이자 뮤즈의 전당이겠지만, 다른 취미에 있어서 이런 곳이 없으리란 법도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취미가 있는 한 모든 사람이 이런 공간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아직 그처럼 꿈을 통해 생생하게 접하지는 못했어도,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잊지 말고 기억해 두도록 하자. 당신의 선더스 빅슨이 초대장을 보내는 것일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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