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문학/전기

「기적을 만든 나라의 과학자」- 정근모

by omicron2000 2022. 2. 28.
728x90

한국이 과학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적을 만든 나라의 과학자

최빈국에서 세계의 희망이 된 대한민국초일류 과학기술입국의 기적은 이렇게 이루어졌다!최연소 물리학 박사로 한국 최초 핵융합 연구를 시작한 제1세대 과학자. 카이스트를 세워 과학자를 키

book.naver.com

 정근모 박사는 한국 과학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가 지금까지 역임한 지위만 해도 과학기술처 장관에 한국과학기술원 부원장, 한국과학재단 이사장에 한국 한림원 총장, 그 외에 몇몇 대학의 총장이나 교수까지 도합 십여 개를 족히 넘으며, 과학기술분야에서만 활약한 것도 아니라서 은퇴 후에는 한국해비타트 한국이사장을 맡으며 봉사활동에 힘쓰기도 했다. 지금까지 직, 간접적으로 만나거나 접한 대통령(해비타트 운동 중 만난 지미 카터 대통령까지)만 세어도 한 손에 꼽을 수 없을 수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해방 이후부터 최근까지 쉬지 않고 활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물리학, 세부적으로는 원자력을 전공한 과학자이기도 하지만 국내 원자력 발전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 이외에 개인적으로 과학자로서의 업적은 알려지지 않은 편인데, 이는 그가 개인의 명예를 위해 과학을 연구하기보다는 한국을 과학 강국으로 키우기 위해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단적으로 말해 과학자 대신 과학 관련 행정가, 관료로서 일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이라면 한국과학기술원, 즉 KAIST의 설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도중 이런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과 같은 유학생들이 가난한 조국 대신 미국에 남아 살아가는 것을 택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윤택한 삶을 누리겠지만 한국은 영영 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여겨,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방안을 떠올린 것이었다. 미국의 국제협조처장 존 해너 박사는 교육기관 설립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고, 박정희 대통령과 당시 장관들의 지지로 KAIST의 전신인 한국과학원 KAIS가 설립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문교부 장관은 정부에 반감을 가진 대학생들이 거부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부정적 견해를 보였는데, 과학기술부 장관의 아이디어로 KAIST가 교육부 대신 과학부 소속으로 설립되었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KAIST는 교육부와 무관하다.) 전두환 정권 시기 연구시설 KIST와 통합되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과학자들의 반대로 다시 분리되어 KIST와는 별개의, 현재의 KAIST가 된다. 이런 긴 과정을 거치며 완성된,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기술대학 KAIST는 사실상 정근모 박사로부터 만들어진 셈이다.

 정근모 박사는 과학 행정가로서의 면모는 물론, 은퇴 이후 해비타트 운동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한국이라는 나라에 바친 사람이다. 그의 덕택에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원자력 강국이 되었으며, KAIST는 이제 해외에서 유학생들이 모여드는 학교가 되었다. 케냐에서는 KAIST를 벤치마킹해 케냐 KAIST(Keny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국명 빼고 한국 KAIST와 동일하다.)를 설립하였을 정도다. (케냐 KAIST 말고도 KAIST를 벤치마킹한 개발도상국의 대학교는 여럿 있다.) 이는 그가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한 일들이 대단히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가 가진 열정 외에도 한국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 자체가 대단히 뛰어났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