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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전기

「로지코믹스」-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by omicron2000 2020.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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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논리학을 해서 미쳤습니까, 아니면 미쳤기에 논리학을 할 수 있었던 겁니까?

 
로지코믹스
『로지코믹스』는 컴퓨터 발명의 뿌리가 된 미완성 고전 ‘수학원리’의 집필자 러셀이 수리논리학자로 세기를 풍미하기까지의 여정을 컬러 만화로 흥미롭게 그려낸 책이다. 소년 시절, 불확실한 세상사에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던 러셀은 절대적인 이성과 확실성의 세계인 ‘수학’을 발견하고 환희를 느낀다. 하지만 기하학의 공리에 심각한 의심을 품고부터 수학의 확실성이 흔들리자, 논리학으로 완전무결한 수학의 토대를 확립하여 절대적 진리를 찾고자 한다. 러셀은 이러한 과정에서 세계대전을 겪고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자신을 몰아붙인다. 러셀이 스스로 선택한 사명은 러셀의 연구와 사생활을 모두 위태롭게 하며 그를 정신병의 문턱까지 내모는데….
저자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출판
랜덤하우스
출판일
2011.02.14

 버트런드 러셀은 영국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 그리고 영문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등 범인류적 지성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본업은 수학과 논리학이었지만 「서양철학사」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정도로 타 분야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선보였으며, 노벨 경제학상의 존 내쉬,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로저 펜로즈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세 명밖에 없는 수학자이기도 하다. 반전 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힌 적도 있고, 풀려난 뒤에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반핵 운동을 하는 등 (러셀-아인슈타인 선언) 사회운동에 힘쓰며 파란만장한 삶을 산 그의 인생을 그리스의 두 수학자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와 크리스토스 파파디미트리우가 만화로 그린 것이 이 「로지코믹스」다.

 「로지코믹스」는 절대로 단순한 전기라고만은 볼 수 없는 작품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메타-전기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러셀의 인생 말고도 두 저자와 삽화가들 등 작업실 동료들이 「로지코믹스」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책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러셀의 역설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자기 자신을 언급하는 책'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로지코믹스」가 바로 그런 예시이다. 심지어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며 연극으로 치면 '제4의 벽'을 자유자재로 뛰어넘는다. 논리학자를 다룬다는 특성 때문일지도 모르고, 러셀을 더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러셀의 삶의 한 토막을 보여주고, 거기에 대해 저자들이 토론하는 부분이 교차되기에 더욱 그렇다. 러셀과 그의 주변 인물뿐만 아니라 책의 저자들도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토론에 참여하는데, 이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아포스톨로스는 수학자라 러셀과 수학자들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크리스토스는 컴퓨터 전문가라 앨런 튜링과 프로그래머의 시선에서 논리를 바라보는 식이다.

 거기에 더해 「로지코믹스」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테마가 공존한다. 바로 광기와 오레스테스다. 먼저 오레스테스를 보자.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는 이 희곡은 왕 아가멤논이 왕비에게 죽고, 그 아들 오레스테스가 복수를 하는 과정을 담았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일 경우 어머니를 죽이는 패륜을 저질렀기 때문에, 죽이지 않을 경우 아버지의 복수를 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패륜을 저질렀기 때문에 오레스테스는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에게 쫓기게 될 운명에 놓이는데, 그는 결국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선택을 한다. 그를 죽이려는 에리니에스를 막은 것은 바로 지혜의 여신 아테나로, 그녀는 오레스테스를 재판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배심원은 다름아닌 아테네의 시민들이라고 말한다. 아테나의 변론을 들은 배심원들은 오레스테스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는 무사히 복수를 완수했다는 내용이다. 그리스의 신이 인간에게 결정을 맡긴다는 것부터 대단히 이례적이며, 공정한 재판을 거쳤다는 점도 특징이라 할 만하다. 정말로 '아테네'스럽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데, 이는 저자가 아테네를 고향으로 하는 그리스인이라는 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희곡은 작중에서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논리학의 역설과 대비되어 러셀의 논리학을 다른 방향에서 비유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또 다른 테마 광기의 경우에는 당대 논리학자들과 연관지을 수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힐베르트의 아들은 정신병원에 입원되었고, 러셀은 집안에 정신병력이 있었으며, 칸토어는 자신의 연구가 인정받지 못한 충격으로 정신병원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표절이라는 등 음모론을 주장했고, 심지어 불완전성 정리를 증명한 쿠르트 괴델은 누군가 자신을 독살할 것이라는 망상장애에 빠져 정신병원에서 단식 자살을 했다. 모두 동시대의 수학자들이며 러셀과 직, 간접적으로 만난 적이 있는 인물들이다. 정작 러셀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노벨상까지 타며 살아오기는 했지만, 저자는 논리학과 광기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시각을 제시한다. 사실 수학자들 중에 '미친' 사람이 많다는 선입견이 있기는 하지만 정말로 정신적인 문제를 겪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정작 분류를 논리학자로 줄이면 위의 예시와 같이 제법 찾을 수 있다. 잠시 러셀의 조수로 있었던 비트겐슈타인도 괴짜 소리를 들었을 정도니 어쨌거나 광기와 논리학의 관계는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저자 아포스톨로스는 조금 특이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데, 논리학을 해서 사람이 미친 것이 아니라 원래 광기를 지닌 사람이었기에 진정으로 논리학을 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레스테스의 신화는 지혜의 여신을 앞세워 '이성'과 '합리'를 내세우고, 다른 테마인 '광기'는 그 자체로 논리학자들의 비논리적 행동에 주목하나 이 상반된 두 테마가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조화를 이룬다. 책의 결말에서는 저자들이 함께 오레스테스 연극을 보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크리스토스는 또 흥미로운 관점을 하나 제시한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는 후반부에 등장해 모든 일을 해결해주는 절대적이고 완벽한 존재가 등장하고, 이를 기계장치로 온 신이라는 뜻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부르는데, (오레스테스에서는 아테나가 이 역할이다.) 이를 현실의 논리학사에 빗대면 튜링이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러셀과 그의 동료 논리학자들이 역설과 맞서는 여정이 복수를 망설이는 부분이고, 기존의 수학 체계가 무너진 것이 클레타임네스트라를 죽인 것이라면 앨런 튜링이 마침내 '컴퓨터'라는 '논리적 기계'를 만들어낸 것이 말 그대로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것이다. 러셀과 논리학자들이 수학을 무너뜨린 것에 무슨 의미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크리스토스의 답은 바로 컴퓨터이다.

 20세기 근대 논리학의 역사 전반을 다루며, 저자의 특별한 생각을 담은 책이기도 하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 단순히 러셀의 전기로만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책이다. 우선 만화라서 쉽게 읽히기도 하거니와, 수학이나 논리학적인 내용은 수학자인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가 친히 등장해 설명해주기 때문에 전혀 어려운 책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특이한 테마를 잡음으로써 러셀의 인생을 다방면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 여러 명이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그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반대로 광기라는 테마를 통해 괴짜같은 면을 엿볼 수도 있다. 결혼 중 바람을 피워 한 번 이혼을 하고, 재혼 뒤에는 부부가 서로 자유롭게 바람을 피울 수 있도록 합의를 했다거나, 아무도 읽지 않을 책을 쓰기 위해 화이트헤드와 논리학을 처음부터 되짚고, 심지어는 1+1=2라는 단순한 식을 증명까지 하는 등 그의 이런 행동은, 어쩌면 논리학자로서의 광기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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