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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전기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폴 호프만

by omicron2000 2020.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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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야 수학을 그만둔 괴짜 수학자 이야기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헝가리 출생의 금세기 최고의 수학자 폴 에어디쉬의 삶을 들려주는 책. 엄청난 양의 논문을 발표하고 기이한 행동으로 유명한 에어디쉬의 생애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부터 최근의 `몬티 홀 딜렘마`까지 다양한 수 학적 문제들과 함께 해설했다.
저자
폴 호프만
출판
승산
출판일
1999.10.20

  누군가에게 수학자를 떠올려 보라고 하면 자나 깨나 수학 생각만 하며, 기행을 일삼는 백발의 노인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사실 진짜로 기행을 일삼는 수학자가 많긴 하다.) 하지만 실제로 수학자들은 젊은 사람부터 나이 많은 사람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며, 대학의 수학 교수들이 대개 점잖은 사람들이듯 성격도 보통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사실 필즈상 수상 조건 중 하나가 40세 이하일 것임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30대를 전후로 하여 가장 큰 업적을 내기에 젊은 수학자를 떠올리는 것이 맞겠지만, 왜인지 수학자라고 하면 나이 지긋한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수학자의 선입견을 거의 완벽하게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헝가리 출신의 천재 수학자 폴 에어디쉬다. 이 책은 수학자로서 그의 삶을 다루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보통 사람과는 궤를 달리하는 괴짜라 이런 내용을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책이다.

(그의 이름을 읽는 방법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일단 본문에서는 폴 에어디쉬라고 했기에 그 표기를 따른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표기는 폴 에르되시가 있지만, 그의 고향인 헝가리 발음을 고려하면 순서를 반대로 하여 에르되시 팔 내지는 에어디시 팔 정도가 적절할 것이다. 참조:pronouncemath.blogspot.com/2013/04/paul-erdos-pronunciation.html#)

 우선 에어디쉬의 괴짜스러운 행적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그는 집이 없어 다른 수학자들의 집에서 며칠씩 묵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지냈고, 동료 수학자의 집에서도 특이한 행동을 자주 했다고 한다. 마약성이 있는 각성제 암페타민을 수학 연구에 도움이 된다는 핑계로 복용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단어의 뜻을 바꿔 사용하기도 했다. 에어디쉬가 가장 많은 신세를 진 절친한 수학자 로널드 그레이엄(그레이엄 수의 그 그레이엄이다)의 경우 에어디쉬가 언제든지 자신의 집에 와서 묵을 수 있게 준비해 놓고 있었다고 하며, 그가 집에서 어떤 특이한 행동을 해도 웃으면서 받아 주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도 같은 수학자였기 때문에 여기에 공감하며 웃어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레이엄 또한 보통 인물이 아니라서 가장 많은 공으로 저글링한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의 기록은 9개였고, 지금은 11개로 저글링에 성공한 사람이 1위이다. 그래도 수학자 가운데서는 그의 기록이 최고일 것이다.) 그레이엄과 관련된 일화로 한 번은 암페타민의 복용을 중단하는 내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한 달 동안 복용하지 않는 것에 성공해 내기에서는 에어디쉬가 이겼지만, 그동안 수학 연구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는 말도 있다. 그레이엄처럼 이런 장난을 치며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동료 수학자가 있었기에 에어디쉬는 집도 없이 수학 연구만 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단어를 마음대로 바꾸어 부르는 것도 정말 에어디쉬스럽다고 할 만하다. 수학자답게 어린아이를 '엡실론'이라고 불렀고, (엡실론ε은 극한에서 임의의 작은 양수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수학을 한다는 것을 '살아 있다'라고 표현해 동료 수학자가 수학을 그만두면 '죽었다', 정말로 죽으면 '떠나갔다'라고 불렀다 전해진다. 과연 살아 있는 동안 계속해서 수학 연구를 계속한 그에게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 외에도 재치 있는 표현을 여럿 만들어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그의 유머감각을 엿볼 수 있다. 에어디쉬 수라는 것도 있다. 에어디쉬 본인은 0으로 시작해, 그와 함께 논문을 쓴 사람은 1을 부여받고, 에어디쉬 수 1의 수학자와 공동 논문을 쓰면 그 사람은 2가 되는 식으로 수학자들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에어디쉬가 수많은 수학적 성과를 낸 만큼 이 숫자는 수학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명예로 취급되는지, 개중에는 자신과 공동 논문을 쓰면 에어디쉬 수를 받을 수 있다고 경매에 올린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이 매물을 산 사람은 더 작은 에어디쉬 수, 즉 0에 가까운 수를 가진 수학자였다고 한다.)

 이처럼 폴 에어디쉬는 그 기행만큼 수많은 일화가 존재하는 수학자이다. 그와 함께 연구했던 학자들 중 많은 사람이 지금도 활동하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남아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재밌는 이야기가 대단히 많다. 대부분의 일화가 그의 특이한 언행과 관련된 것인데, 그런 이야기도 잘 보면 하나같이 그의 수학에 대한 열정과 애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사고방식이 조금 특이했을 뿐, 다른 어느 학자와 다름없는 평범한 수학자였던 것이다. 제목에서 '수학자 모두가 약간 미친 것'이라고 하는데, 괴짜 에어디쉬나 다른 수학자나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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