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문학/전기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 아트 슈피겔만

by omicron2000 2020. 11. 30.
728x90

지옥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와 지옥에 떨어진 아들

 
쥐(합본판)
만화책 유일 퓰리처상 수상작 『쥐 : 한 생존자의 이야기』. 새로운 표현 양식을 설계하고 실험적인 기법으로 《쥐》를 탈고하기까지 아트 슈피겔만은 14년이라는 긴 세월을 소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슈피겔만은 만화라는 대중문화를 예술적 표현 양식의 하나로 끌어올린 ‘그래픽 노블’의 창시자가 되었다. 유태인 출신이면서 동시에 유태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작가 슈피겔만은 독일의 구겐하임상, 미국의 퓰리처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이 작품에서 아우슈비츠의 끔찍한 대학살 속에서도 살아남은 아버지의 기구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의 이야기 속에서 유태인은 단순한 대학살의 피해자, 나찌는 가해자가 아니다. 이 책은 폴란드 부호 일가의 영락의 경로를 따라가면서 지옥의 문턱에 섰을 때 인간이 얼마나 비열하고 또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고한다. 여느 홀로코스트 보고서에 견주어 《쥐》가 이룬 주요한 성과는 탁월한 사실성과 객관성에 기인한다. 《쥐》는 소스노비에츠에서 아우슈비츠까지의 행로에 절망과 죽음의 사례를 즐비하게 제시하면서, 단순히 나찌의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과거 사건이나 생존자들이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개인사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상대의 존재를 말살시키려는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보편성을 가진다.
저자
아트 슈피겔만
출판
아름드리미디어
출판일
2019.03.08

 저자 아트 슈피겔만은 유대인으로, 프랑스인 여성 (결혼을 위해 유대인으로 개종했다) 프랑소와즈 물리와 결혼한 만화가이다. 그의 부모 블라덱과 아냐 슈피겔만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인데, 이 책은 아트가 블라덱을 만나 당시의 일을 듣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즉 아트와 프랑소와즈, 블라덱이 이야기하는 현대 파트와 블라덱과 아냐의 생존담을 다루는 과거 파트의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쥐」가 단순히 「안네의 일기」처럼 전쟁 당시의 상황만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쟁이 끝난 뒤, 아냐가 자살하고, 이로 인해 가족관계가 소원해지며, 아트와 블라덱 모두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데, 전쟁을 겪은 세대뿐만 아니라 그 다음 세대가 겪는 마찰도 조명한다는 점이 「쥐」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블라덱의 회상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아직 폴란드에서 살던 시절에서 출발한다. 그가 아냐를 만나 결혼하게 되는 것까지는 약간의 사건이 있어도 행복한 삶이었지만, 전쟁이 일어나 군에 징집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나고, 탄압을 피해 살다가 게슈타포에 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향하게 된 것이다. 수용소는 많은 영화나 문학 작품을 통해 알려진 것과 같이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없는 환경이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만큼의 음식만 받고,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하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감시당하는 삶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블라덱은 아냐에 대한 사랑으로 버티며 자신의 외국어 능력과 잡다한 재주를 발휘해 살아간다. 어딘가에서 배운 함석장이 일이나 구두 수선 솜씨를 통해 감시인 카포와 친해져 약간의 혜택을 받은 것이다. 이것도 결코 편한 삶은 아니었지만, 지옥을 견디는 그 나름의 방법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지내던 블라덱과 아냐는 다른 수용소로 옮겨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이 항복해 자유를 되찾는다.

 블라덱의 파란만장한 생존기는 그 자체로 역사적인 가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영웅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차검증 없이 순전히 블라덱의 증언만으로 구성되었기에 아트는 이를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이기는 하지만 아트는 신경질적인 블라덱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들의 관계는 애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의 불편한 관계에는 더 깊은 사정이 있다. 아트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그의 형 리슈의 일이다. 블라덱과 아냐는 첫째 아들 리슈를 안전하다고 생각된 친척 집에 맡겼는데, 그 집의 식구들도 끌려갈 위기에 처하자 가족이 전부 독약을 먹고 죽었다고 한다. 부부는 아들의 죽음을 접한 뒤 큰 충격을 받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온 유럽의 고아원을 뒤지며 아들을 찾아다녔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리슈는 그들의 마음속에서 이상적인 아들이 되어 있었고, 형의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아트가 그의 무게에 짓눌려 괴로워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더해 우울증을 앓던 아냐가 자살을 했을 때 아트는 이것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였고, 급기야 그 책임을 아버지 블라덱에게 돌리며 싸우기까지 한다.

 회상 파트의 주인공은 당연히 이야기를 하는 블라덱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아트 본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삶에 대해 자세한 것은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내에서 그는 블라덱의 관찰자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블라덱은 차별을 직접 몸으로 겪어 왔음에도 오히려 흑인을 차별하며, 무시하는 언행을 보인다.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로 변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트는 나치나 다름없는 행동이라며 그를 비난하는데, 이는 세계대전 직후 문화의 변동으로 기성세대와 충돌하는 신세대의 모습을 반영한다. 또한 중간에 삽입된 저자의 다른 만화인 「지옥 혹성의 죄수」는 아냐의 죽음 이후 여기에 죄책감을 가진 아트가 스스로를 죄수로 묘사하는 내용인데, 이처럼 저자의 감정이 자세히 드러나기 때문에 「쥐」는 자전적인 성격도 보인다. 자신의 부모가 겪은 아우슈비츠가 '지옥 수용소'였다면, 그들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자신 또한 '지옥 혹성'에 살고 있다는 점을 평행하게 드러낸 것이라 생각된다. 블라덱이 쾌활한 청년이었지만 아우슈비츠의 경험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변해 버리고, 이것이 아들 아트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우슈비츠는 2대째 이어지는 지옥을 선사한 셈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