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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추리

「매그레와 벤치의 사나이」 - 조르주 심농

by omicron2000 2024.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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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똥색 구두와 빨간 넥타이

 
매그레와 벤치의 사나이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와 벤치의 사나이』. 파리의 생마르탱 대로의 어느 으슥한 막다른 골목, 한 남자가 칼에 찔려 살해당한 채로 발견된다. 루이 투레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오랫동안 한 회사에서 창고 관리인으로 성실하게 일해 온 중년 남성으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상의 인물이다. 이런 으슥한 장소에서 취객이나 건달들 사이의 칼부림쯤이야 흔한 일이지만, 루이 투레같이 지극히 평범하고 얌전해 보이는 남자가 이런 곳까지 무엇 하러 들어와서 살해를 당했는지 매그레는 호기심이 동한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매그레는 루이 씨가 일해 왔던 회사가 3년 전에 이미 문을 닫았으며, 그가 오랫동안 실직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부인에게 그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고, 매일 아침 출근하듯 집을 나섰으며,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는 남몰래 새 직장을 구했던 걸까? 그러나 당시 우연히 그를 목격했던 주변 사람들은, 그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공원의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만을 보았다고 증언할 뿐이다. 지난 3년간, 루이 씨는 대체 어떻게 지내 왔던 걸까? 그가 지니고 있던 거금의 출처는 대체 무엇일까? 베일에 싸인 그의 행적을 파헤쳐 가며, 매그레는 그동안 숨겨져 있던 그의 사생활의 비밀스러운 흔적들을 뒤쫓는데…
저자
조르주 심농
출판
열린책들
출판일
2017.08.20

 주인공이 사설탐정인 추리소설과 비교해 주인공이 경찰인 추리소설의 장점이 하나 있다면, 사건과 관련된 정보에 접근할 정당성이 크게 확보된다는 점이 있다. 아무리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수사에 도움을 준 사설탐정이 실제로 존재했다지만 외부인이 사건 현장에 출입해서 제멋대로 조사하는 것이 영 좋게 보이지도 않고, 주인공 띄워준다고 공권력을 무능하게 묘사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 나는 이쪽을 꽤나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쥘 매그레는 그런 경찰 탐정의 극단에 존재하는 듯한 인물이다. 매그레 반장이라고 부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제법 높은 직급의 경찰이기에 복잡한 트릭을 해결하기보다는 부하 경찰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정보를 수집하고 용의자를 심문하는 식으로 추리를 한다.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수사물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느낌이랄까.

 사건은 한 남자의 죽음이다. 언뜻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살인 사건이지만, 피해자의 아내는 그의 복장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평소라면 절대 신지 않았을 누런 (작중에서는 거위똥색이라고 부른다) 구두를 신고,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절대 매지 않았을 빨간 (작중에서는 야할 정도라고 언급된다)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부부 관계가 심상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고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자가 불륜을 저지르며 이중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려고 기를 쓰는 다른 많은 작품과는 달리 직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렇다고 독자처럼 직관대로 추측하는 건 아니고, 경찰답게 논리적인 비약 없이 제대로 수사한다.

 전반적으로 장르소설이 아니라 순문학으로서 잘 쓰였다는 느낌이다. 여타 추리소설과 같이 반전이나 트릭에 목을 매지 않는다. 천재 명탐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유능한 수사반장이라는 입장에서 정석적인 방식으로 수사를 하는데, 그럼에도 흡입력이 높다. 살인사건 자체도 현실에 있을 법한 사건이고, 범인의 동기도 살해 수법도 평범하다면 평범해 추리소설로서 인상이 약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피해자의 가족과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그만큼 풍부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짜임새가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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