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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생명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로렌스 앤서니

by omicron2000 2020.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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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포화에 상처입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전쟁이 나면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모두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책의 저자 로렌스 앤서니는 동물이 좋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야생동물 보호구역 ‘툴라툴라’를 운영하며 살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동물들이 위험에 처했단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사는 곳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라크로 떠난다. 전쟁이 벌어진 뒤 이라크로 들어간 최초의 민간인이라는 영예(?)를 얻게 된 저자는 예상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바그다드 동물원에 있던 650여 마리의 동물 중 살아남은 것은 겨우 수십 마리인데, 그들을 살릴 수 있으리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동물을 구하는 데는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자신이 한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사람들의 양심에 깊은 흔적을 남기리라 생각하면서. 유명 주간지 ‘타임(TIME)’의 자매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는 이 책을 두고 ‘전쟁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단 한 권의 책’이라 평했다. 참 다행이 아닌가. 우리를 대신해 동물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로 뛰어들 만큼 바보 같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리고 기쁘지 않은가. 바로 그 사람이 쓴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우리 앞에 당도했다는 것이.
저자
그레이엄 스펜스, 로렌스 앤서니
출판
뜨인돌출판사
출판일
2019.03.07

 바그다드엔 큰 동물원이 하나 있었다. 중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원이라고 불렸던 곳이지만,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동물들을 옮기는 데에는 시간과 자원이 많이 소모되기 마련인데, 갑작스럽게 일어난 전쟁 때문에 준비가 되지 않아 동물들을 동물원에 둔 채로 사람들만 피난을 갔기 때문이다. 바그다드는 전쟁터가 되었고 동물들은 버려졌다. 우리를 청소할 사육사도, 먹이를 던져줄 관광객도 없으며, 동물원의 시설도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물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로렌스 앤서니는 이 동물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전쟁 중인 이라크까지 목숨을 걸고 들어가 구조 작업을 시도하였는데, 전쟁이라는 거대한 싸움 속에서 일어나는 그와 동료들의 또 다른 싸움은 전쟁의 피해자는 사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생명을 구하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쟁터에서 동물들을 돌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한 소음이나 포격도 문제가 되지만, 먹일 물과 먹이도 없고, 장비도 열악해 제대로 된 구조작업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람조차 먹을 것이 없어 동물원의 동물들을 잡아먹었으며, 단순히 재미를 위해 갇혀있는 동물들을 쏴죽이는 군인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일대에서 가장 커다란 동물원이었다고 하더라도 저자가 도착했을 때에는 대부분이 죽어 있는 상태였고, 그나마 살아 있는 동물들을 데리고 온다고 하더라도 성공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상당수의 동물들을 구출하는 데에 성공해 내었는데, 여기에는 야생동물 보호 활동가로서의 사명감은 물론, 여기에 더해 주변인들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 그를 따라 함께 온 동료들도 있었고, 현지에서 장비를 지원해주며 도움을 준 부대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제아무리 동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던 저자라 할지라도 그정도의 동물들을 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군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은 더없이 작은 존재일 뿐이지만 그런 자들도 생명을 구해내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동물원에 있던 동물 모두를 구한 것도 아닌데 무슨 영향이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개중에는 멸종위기 상태에 있는, 희귀한 동물들도 있었기 때문에 구해낸 동물의 숫자에 관계없이 충분히 가치있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Babylon's Ark, 즉 바빌론의 방주라는 뜻인데, 여기서 방주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킨다. 노아가 홍수로부터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암수 한쌍씩 방주에 태웠듯이, 저자는 전쟁이라는 홍수에 맞서 동물들을 구출해냈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시간을 지체하다간 본인도 홍수에 쓸려갈 수도 있었을 테지만 최대한 많은 동물들을 버리지 않고 데려온 노아와 저자는 이런 점에서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극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서로 잡아먹지 않고 오히려 서로 지켜준 동물들과 그런 동물을 살려내기 위해 목숨을 건 모든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이며, 그들은 어느 나라의 군대도 아닌, '전쟁'이라는 개념 자체와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했다는 것이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해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생각한다면, 전쟁에 맞서 싸우는 사람의 무기는 '생명을 구하는 것'임이 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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