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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릴러

「어셔가의 몰락」- 에드거 앨런 포

by omicron2000 2020.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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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에 내린 죽음의 공포와 몰락

 

어셔가의 몰락

오래 된 집, 지붕에서부터 번개 모양으로 벽을 타고 내려와 음침한 늪 속으로 사라지는 미세한 균열, 도플갱어, 의식과 무의식의 이중적 자아 구조, 삶과 죽음, 자아와 타인, 현실과 환상, 자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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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나'는 친구인 로드릭 어셔의 집에 방문해 그의 집에서 잠시 지내기로 한다. 어셔의 가문은 원래부터 특이한 점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그가 유독 이상해 보였고, 그의 집은 음침했다. 이렇게 어두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음악을 연주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셔는 자신의 동생 매들린이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하며, 자신 또한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토로한다. 식물에게 지각이 있다는 강박적인 생각에 빠져 감각이 예민해지고 초췌해진 것이다. 얼마 뒤 매들린이 병으로 사망하게 되자 화자와 어셔는 함께 그녀를 묻어주는데, 이 뒤로 어셔의 상태는 더욱 나빠진다. 화자가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광기의 회합」이라는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으나 이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마치 유령이 소리를 따라 하는 듯 소설에 적힌 것과 유사한 소리가 밖에서 나기 시작한다. 이를 듣고 어셔가 말하길, 사실 매들린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단지 가사 상태에 빠진 것뿐이었고, 예민한 어셔는 그것을 눈치챘으나 차마 고통받는 매들린을 계속 볼 수 없었기에 생매장을 해 버렸다고 한다. 급기야 점점 가까워지던 소리는 문 앞까지 도달하고, 어셔가 문을 열자마자 지하에서 나온 매들린이 쓰러지며 둘은 사망한다. 화자가 집을 빠져나오자마자 본 것은 무너지는 어셔 가문의 집이었다. 제목은 가문의 몰락임과 동시에 집의 몰락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다.

 죽음의 공포를 소재로 한 고딕 호러 소설로, 에드거 앨런 포의 가장 대표적인 호러 소설이기도 하다. 처음 만날 때부터 정상은 아니었지만 화자가 처음 갔을 때 자작곡까지 들려줄 정도로 반갑게 맞아준 어셔였는데, 날이 갈수록 점점 피폐해지는 그의 모습만으로도 공포를 일으킨다. 하지만 공포의 절정은 죽은 줄 알았던 매들린이 살아 돌아오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는 가사 상태에 빠진 사람을 죽은 줄 알고 매장한 경우도 있었다 하니 어느 정도의 현실성도 갖추고 있는 셈인데, 매들린의 경우에는 병에 걸려 언제라도 죽을 것만 같은 상황이었기에 일어나 문까지 도달한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에드거 앨런 포의 대표 시 <Raven(큰까마귀)>과 비교하여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Raven>은 화자에게 한 큰까마귀가 날아와 'Nevermore' (이젠 끝이야, 영영 없으리 등으로 번역된다)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말하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화자는 사랑하던 여인 레노어의 죽음에 괴로워하며 이를 잊게 해 달라고, 혹은 그 슬픔을 떨칠 수 있게 해 달라고 큰까마귀에게 부탁하지만, 큰까마귀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한다. 급기야 화자가 큰까마귀를 부정하거나 쫓아내려 하지만 큰까마귀는 움직이지도 않는다는 내용이다. 레노어의 죽음이 화자를 놓아주지 않고 끝까지 괴롭힌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포의 다른 시 <Annabel Lee(애너벨 리)>는 그의 아내를 떠나보낸 뒤 쓴 작품인데,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어셔가의 몰락」에서 매들린은 <Raven>의 큰까마귀와 같다.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한편으로는 감추고 싶지만, 기어이 사라지지 않고 나타나 괴로움을 상기시키는 존재이다. 큰까마귀가 레노어의 죽음을, 매들린이 어셔의 죽음을 상징한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 테마가 '죽음'이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렇다면 어셔는 매들린을 왜 그렇게 두려워하고, 감추려 했을까? 나는 이것이 그들 사이의 관계, 정확히는 근친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우선 초반에 어셔 가는 방계 없이 아버지에서 아들로만 이어졌다는 언급이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근친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들을 딱 한 명만 낳아서 어떻게든 직계로만 이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어셔 가가 상당히 크고 부유한 귀족 가문이라는 점에서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고, 저자가 의도적으로 가문의 비밀스러운 속성을 암시하기 위해 넣은 문구로 보인다. 방계가 없다는 것은 다르게 말해 가문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다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매들린의 병과 어셔의 정신 질환도 반복되는 근친혼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어셔는 정신적으로만 괴로울 뿐 매들린처럼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를 볼 때마다 자신도 마찬가지로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를 그만 보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경우 마지막에 매들린이 어셔를 찾아오고, 둘이 껴안은 채로 죽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선조로부터 이어지는 근친혼이라는 이름의, 피할 수 없는 저주가 후손에게 질병을 내리고, 급기야 가문의 몰락을 초래한 것이다.

 「어셔가의 몰락」을 읽으면 러브크래프트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러브크래프트가 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니 반대가 되어야 할 것이지만, 어쨌든 「어셔가의 몰락」과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사이에 유사성이 있음은 확실하다. 수상한 가문과 그 가문에 이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저주가 그것인데, 러브크래프트의 「인스머스의 그림자」에서는 딥 원이라는 괴물의 피가 섞인 가문이 등장한다. 「인스머스의 그림자」의 주인공은 인스머스라는 어촌 마을에 방문했다가 이곳이 딥 원들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만, 결말에서 자신의 조상 또한 딥 원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일원이 된다. 근친혼, 그리고 괴물과의 교배는 둘 다 금기시되는 것이지만 먼 조상이 이를 시작했고, 같은 행동을 수 세대 반복한 끝에 그 후손이 파멸에 이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러브크래프트가 코스믹 호러라는 장르를 개척한 인물임에 집중한다면 「어셔가의 몰락」은 그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한 장르의 시초가 되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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