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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스릴러

「더 체인」- 에이드리언 매킨티

by omicron2000 2021.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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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아이를 납치해야 한다

 

더 체인

당신은 지금 체인에 들어왔어요.”살아 있는 범죄의 순환 고리,‘체인’의 올가미에 걸린 자는 반드시 괴물이 된다.딸이 납치당했다. 납치범의 요구는 두 가지. 하나는 딸의 몸값을 비트코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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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딸을 키우며 살던 레이철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딸 카일리가 버스를 기다리는 도중 유괴되었다는 것이다. 레이철에게 전화를 건 납치범은 비트코인으로 거액의 돈을 입금할 것을 요구하고, 딸을 구하고 싶으면 자신이 했던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납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두 번째 요구사항은 납득하기조차 어려웠는데, 납치범은 자신도 아이를 납치당한 상태라고 말한다. 납치된 자신의 아이를 구하려면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납치해야 하고, 그 아이의 부모가 다음 타깃을 납치해야만 아이를 풀어주는 구조로 되어 있던 것이다. 레이철은 순식간에 '체인'이라는 거대하고도 복잡한 범죄에 휘말려 버렸고, 딸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체인의 방식을 따라야만 한다.

 「더 체인」은 크게 2부로 구성된 작품이다. 1부는 레이철이 카일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그녀는 체인의 요구에 따라 적절한 장소와 타겟을 물색한 다음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져 저자가 정말 범죄를 계획한 적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경찰이나 법조계에 연고가 없고, 돈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아니면서, 인맥과 신용등급을 고려해 몸값을 간신히 지불할 여력은 되는, 한마디로 '적절한' 타깃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 SNS를 활용해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납치하기까지의 과정은 이 책에서 가장 긴장감이 넘치는 장면이기도 하다. 평범한 대학 강사, 그것도 철학을 가르치는 주인공이 이런 완전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아이를 잃을 상황에 놓인 부모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에 납득이 가능하면서도 인상적이다. 1부는 이렇게 레이철이 아이를 납치하고, 그다음 사람이 체인을 이어가게 되어 카일리를 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2부에서는 형식이 조금 달라져 레이철 이외에 다른 시점이 등장한다. 정확히는 두 시점이 교대로 한 챕터씩 나오는데, 처음에는 뜬금없이 나오는 새 인물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점차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진다. A - B - A - B 식으로 반복되다가 A와 B가 마침내 한 장소에 모여 결착을 내는 것이다. 1부의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어 카일리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어도 체인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자 체인을 무너뜨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이 2부의 내용이다. 스릴러 소설의 특성상 자세한 전개는 밝히지 않겠지만, 만능처럼 느껴지는 해킹 기술을 제외한다면 그 과정도 1부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며 설득력이 있다.

 「더 체인」은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도 탁월했지만, 무엇보다 '체인'이라는 소재가 이 작품을 특별하게 하는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멕시코의 카르텔이 실제로 사용한 '교환 납치'라는 수법에서 착안했다고 하며, 이는 납치 피해자를 대신해 그 가족이 인질이 되는 것을 악용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교환 납치를 접하고선 자신의 두 딸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하는데, 이 모습은 책 속의 레이철에게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평범한 철학 강사였던 주인공이, 아무 죄 없는 아이에게 자신의 딸을 납치한 자들과 똑같은 짓을 한 것 말이다. 레이철의 직업이 철학 강사라는 점도 범죄나 폭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반인을 대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이 작품의 테마가 드러난다. '인간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내지는 '사랑이라는 가장 숭고한 감정의 이름으로 극악무도한 악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저자의 답은 '부모이기에 자식을 위해 자신의 손을 더럽히면서까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였다. 하지만 이 책이 결코 사랑의 이름으로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레이철은 모성애로 체인을 무너뜨리는 데에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범죄에 가담하게 된 원인도 사랑이었지만, 그 범죄의 사슬을 끊어버린 것 또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주제는 이렇게 더욱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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