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스릴러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 워싱턴 어빙

by omicron2000 2021. 5. 23.
728x90

슬리피 할로우의 이카보드 크레인과 목 없는 기수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

책으로 만나는 새로운 세상

book.naver.com

 미국, 네덜란드계 정착민들이 사는 마을에 이카보드 크레인이라는 이름의 젊은이가 있었다. 마을의 학교에서 선생 일을 하고, 때로는 사람들에게 찬송가를 가르치며 살던 그는 마녀나 유령 등의 미신을 잘 믿는 성격이었다. 특히나 이 마을에서 유명한 전설이라 하면 목 없는 기수가 있는데, 그는 미국 독립전쟁시절 대포알에 맞아 머리가 날아가버린 독일인 용병의 유령이라고 전해진다. 한편 크레인은 카테리나 반 태슬이라는 여인에게 빠져 있었고, 그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아브라함 반 브런트(혹은 브롬 본스)라는 힘센 남자 또한 그녀에게 관심이 있었다. 하루는 반 태슬 집에서 축제가 열려 마을 사람들이 찾아간 가운데, 한껏 차려입은 크레인이 카테라나에게 (자세한 내용은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도) 청혼을 하였다. 카타레나가 무슨 답을 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날 밤 돌아가던 이카보드 크레인은 전설의 목 없는 기수를 만난다. 겁에 질린 그는 말을 타고 미친 듯이 달렸지만 기수의 말은 그를 바싹 쫓았고, 결국 말에서 떨어져 고꾸라지고 만다. 다음 날 사람들이 그와 말을 찾으러 나섰을 땐 그는 온데간데없이 그의 물건만이 남아 있었다.

 소설의 내용 자체가 짧은 편이고, 그마저도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기에 미스터리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사실 전후 사정을 따지고 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채기 쉽다. 카테리나를 둘러싼 일로 크레인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브롬 본스가 자신의 말 데어데블을 타고 목 없는 기수로 분장한 채 크레인을 쫓아간 것이다. 아마 경쟁자를 제거하고자 그에게 겁을 주어 마을에서 쫓아내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브롬이 크레인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것과 말을 잘 탔다는 것을 통해 추측한 가설일 뿐, 어쩌면 목 없는 기수의 유령이 정말 와서 크레인을 죽이거나 납치해간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렇게 해석한 경우도 종종 있고 말이다. 사건의 전말이 어떻게 되었든,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의문스러운 실종 사건이라는 점에서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은 간단한 미스터리 소설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그저 짧은 공포(구체적으로는 고딕 호러) 소설이지만,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은 그 서술 방식이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첫째로, 시골 마을과 사람들에 대한 시각적인 묘사가 탁월하다. 주인공인 이카보드 크레인만 해도 허수아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크고 마른 체형을 가져 다리는 마치 삽처럼 보인다고 할 정도로 자세한 묘사를 해 놓았는데, 덕분에 독자 입장에서는 200년 전 미국의 마을이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두 번째 특징은 화자가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없는 듯하다는 것이다. 크레인이 카테리나에게 청혼할 때에는 '내'가 듣지 못했다고 하는 등 화자가 드러나지만, 정작 뒤에서는 기수가 크레인을 쫓는 장면이나 인물의 속마음까지 묘사가 되는 등 전지적 작가의 시점 또한 나타나기 때문이다. 화자가 크레인과 기수를 쫓아다니며 이 모든 광경을 보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렇게 시점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전지적 시각을 유지하는 동시에 독자를 작품 안으로 들이려는 시도처럼 느껴진다. 독자가 완전히 작품 안에 들어온다면 목 없는 기수와의 추격전을 감상할 수 없을 것이고, 완전히 전지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미스터리를 즐길 수 없을 테니 그 중간 정도의 성질을 띠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의 가치는 단지 형식과 문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이 소설이 '미국적'이라는 데 있다.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1820)은 워싱턴 어빙의 단편집 「신사 제프리 크래용의 스케치북」에 수록된 단편 중 하나로, 그의 다른 대표작 「립 밴 윙클」(1819)또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립 밴 윙클」은 최초의 미국 소설이라고도 불리는데, 문학의 중심이 유럽이던 19세기 초에 미국인이, 미국을 배경으로 써 유럽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같은 특성을 공유하는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 또한 최초의 미국 소설 중 하나이며, 워싱턴 어빙이 처음으로 영국에서 인정받은 미국인 문필가라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현재 국제 문학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미국 문학의 기원인 셈이다. 다만 당시가 미국 건국 초기여서 그런지 순수하게 미국적이라기에는 유럽의 흔적이 제법 있다. 카테리나 반 태슬과 브롬 본 브런트 (그리고 립 반 윙클)는 '반' 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네덜란드 출신이고(빈센트 반 고흐와 같은 Van으로, 이는 네덜란드인 특유의 이름이다), 목 없는 기수는 헤센 용병(독립전쟁때 영국이 고용한 독일인 용병)이며, 머리가 없다는 점은 아일랜드의 전설인 둘라한을 연상시키기는 식이다. 워싱턴 어빙이 유럽에서 활동하였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미국 초기에는 실제로 네덜란드계 정착민들이 많았고, 헤센 용병도 결국 미국사에 관련된 일원이라는 점에서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은 미국 문학의 기원으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저자가 유럽의 영향을 받아 유럽인을 등장시킨 것이 아니라, 당시 미국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이것이 자연스러우며 미국적이라는 것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