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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사회과학

「규제의 역설」- 최성락

by omicron2000 2021.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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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좋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낸 규제가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가?

 
규제의 역설
프랑스 대혁명에서, 급진파인 자코뱅당의 리더로 정권을 잡은 로베스피에르는 수많은 실험적인 정책들을 추진하다 결국 실패해 단두대에 올라 최후를 맞았다.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고 단두대에까지 오르게 된 데에는 수많은 역사적인 원인들이 작용했겠지만, 저자는 여기에 대담한 가설을 하나 더 추가한다. 바로 우유 가격에 대한 과도한 규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혁명기의 어수선함 속에 우유 값이 올라 국민들이 어려워한다 → 정부가 우유 값을 지정해 그 가격보다 비싸게 파는 사람을 처벌한다 → 시장에서 우유가 사라지고, 암시장에서 비싸게 유통되어 역시 국민이 어려워한다 → 원인을 조사하니, 사료 값 인상분을 반영하려다보니 정부가 정한 가격에는 맞출 수가 없었다 → 그래, 괘씸하군! 정부가 사료 값을 일률적으로 지정하고, 그 가격보다 비싸게 파는 사람을 처벌한다 → 그러자 아무도 사료를 만들어 팔려고 하지 않는다 → 사료가 귀해지자 배고픈 젖소는 우유를 내지 못한다 → 암시장에서도 우유가 귀해지고, 가격은 계속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 우유만이 아니라 우유를 사용하는 빵과 치즈의 가격도 폭등한다 → 견디지 못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다!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당은 항상 국민을 앞세우고 국민의 삶을 걱정했다. 역사가 중 누구도 그들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말로 우유 값을 안정시켜 누구나 싼 가격에 우유를 사먹도록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고, 단두대라는 결말을 맞았다. 선의로, 좋은 의도로 만든 정책들이 나쁜 결과로 끝난 사례는 의외로 꽤 많다. 베네수엘라의 ‘마진 30% 룰’은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당의 오류를 수백 년 후에 똑같이 답습한다. 정책이란 게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 말만 그럴듯한 정책들은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무책임하게 툭툭 던져지고, 때로는 선의를 방패삼아 실패를 정당화한다. 비록 실패했지만 좋은 의도에서 시행된 정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둘 쌓인 그런 정책이 결국 한 나라의 경제를 파탄시키고, 국민들이 나라를 버리게 만든다. 역사상 결코 적지 않은 국가의 정부가 부패와 실정이 아니라 ‘자칭 실수’가 빚어낸 빵 한조각의 문제 때문에 물러났다. 《규제의 역설》은 이런 역사와 현실을 종횡무진하며 다양한 규제의 세목과 그 이면들을 살핀다. 수백 년 역사를 넘나들며, 미국, 영국, 프랑스부터 루마니아, 리비아, 베네수엘라,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세계 각지의 엉뚱하고 황당한 규제 정책들을 다룬다. ‘하룻밤에 읽는 규제의 역사’라 할 정도로 사례들 하나하나가 흥미진진하다.
저자
최성락
출판
페이퍼로드
출판일
2020.07.17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규제란 규칙이나 규정에 의하여 일정한 한도를 정하거나 정한 한도를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한도를 정해 놓고 이를 어기지 않도록 제약을 거는 것 전반을 규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규제는 우리 삶에 있어서 불편함만 초래할 것 같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간단한 예시로 범죄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규제의 일환이다. 이처럼 규제는 사회 구성원간의 마찰을 방지하고, 사회가 원활하게 굴러가기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매년 800여건의 규제가 만들어지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분명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세운 규제일 텐데 정작 살기 편해지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규제를 지키기 싫어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치인들이 국민을 속이고 잘못된 규제만을 만드는 것일까? 「규제의 역설」은 40여가지 역사적 사례를 들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분석한다.

 역사적으로 백성과 국민을 진심으로 위하는 지도자는 많았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를 이끈 로베스피에르는 부당한 왕정에 맞서 싸운 인물이기에 진정 국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혁명으로 올라간 우유 값을 낮추고, 이보다 비싸게 파는 사람들을 처벌했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는데, 우유 값이 지나치게 내려가자 우유를 팔아도 이익이 되지 않아 목장 주인들이 우유를 팔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우유를 살 수 없게 되자 암시장에서 더욱 비싼 값에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로베스피에르는 목장 주인이 우유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건초와 사료 값을 낮추도록 하였다. 우유 값을 규제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보다 비싸게 파는 사람을 강하게 처벌하자 이번에는 사료를 파는 사람이 줄었다. 결국 제대로 먹지 못한 젖소는 우유를 생산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끝내 로베스피에르는 실패한 정책으로 인해 쫓겨난다. 책 앞머리에 소개되는 로베스피에르의 일화는 규제의 역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이자 가장 고전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경제학이 미흡했기에 시장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사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단순 지식 부족으로 설명될 문제는 아니다.

 그 외에도 규제의 역설이 나타난 예시는 수없이 많다. 19세기 인도에서는 코브라에 사람이 물려 죽는 피해를 막기 위해 코브라에 포상금을 걸었으나 코브라를 사육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포상금을 폐지하자 키우던 코브라를 그대로 방사해 코브라가 오히려 늘어난 일도 있었다. 최근 영국에서는 비닐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비닐봉투를 여러 번 쓰게 할 목적으로 튼튼한 비닐봉투를 만들었지만, 비닐봉투 하나를 만드는 데에 드는 비닐의 양이 크게 늘어 쓰레기의 양은 오히려 늘어났다. 클린턴 대통령은 누구나 집을 가질 수 있도록 돈을 쉽게 대출받을 수 있는 닌자 론을 시행했는데, 이것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이 되었다. 코브라를 줄이고, 쓰레기를 줄이고, 주거를 보장해주는 것은 국민의 행복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임에도 이에 관한 규제가 큰 부작용을 보인 것이다.

 앞에는 해외의 사례만 소개했지만, 국내에 규제의 역설이 없던 것도 아니다. 최저임금제로 인해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높아지자 오히려 고용이 줄어 노동자의 평균 소득은 감소했고, 대학 강사법이 시행되자 학교 내부 규정과 충돌해 대학 강사의 수는 줄어들었다. 대학의 질 향상을 위해 시행한 대학 평가는 받으면 받을수록 불이익이 커져 대학 평가를 거부한 대학이 오히려 성장했으며, 카지노 입장 제한은 도박 중독자를 치료하기는 못할망정 불법 도박이 성행하도록 했다. 이처럼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지고 시행한 규제라 하더라도 목적과는 동떨어진 결과를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가 항상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규제의 역설이 발생한 상황을 잘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해당 규제는 현재 문제가 되는 상황이 있을 때 그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하기보다 증상만을 완화시키는 수단이었다는 점이다. 프랑스 혁명 직후 우유 가격이 높았던 것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지, 우유 값을 낮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비닐 쓰레기가 많은 것은 비닐봉투를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당연시되었기 때문이니 비닐봉투를 튼튼하게 만들어도 많은 사람들은 한두 번만 사용했을 것이다. 물론 우리야 해당 정책이 실패한 것을 알고 난 뒤에 보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예측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규제는 그만큼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규제의 역설이 몰고 오는 부작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해결법도 이와 마찬가지다. 당장 눈앞의 증상을 해결하는 데 급급하지 말고, 그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멀리 보려고 한다면 규제의 역설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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