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문학/사회과학

「인공지능 시대, 인간 통역 40년을 돌아보다」- 곽중철

by omicron2000 2021. 2. 8.
728x90

인공지능은 인간의 통번역을 대체할 수 있는가

 

인공지능 시대, 인간 통역 40년을 돌아보다

40년 통역 인생, 그 짜릿했던 기억들 1983년 파리 유학에서 돌아와 올림픽조직위, 대통령비서실, YTN 등에서 통역 현업을 마치고 1999년 모교에 임용되었을 당시 조그만 출판사를 경영하던 아내가

book.naver.com

 이 책의 저자로 말할 것 같으면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 1기로 입학하여 한평생을 통역, 번역에 바친 대한민국 1세대 통역사이다. 무려 40년 동안 통역 업무에 종사하다 보니 국내 가장 대표적인 통역사가 된 것은 물론, 다양한 국제회의에 참여하며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를 몸으로 겪어 온 인물이기도 하다. 대통령만 해도 여러 명을 직접 만난 적 있으며, 2002 월드컵이나 대구 세계육상대회 등 국제 규모의 체육 행사에도 통역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통번역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그는 후진 양성에도 큰 힘을 들이고, 그 덕분에 그의 제자들 또한 전국 각지에서 중요한 일을 맡아 활약하는 중이다. 그는 개인 홈페이지 www.jckwak.net에 평소 다양한 글을 올리곤 했다는데, 이 책은 그가 홈페이지에 20년 동안 업로드한 내용을 남기고자 일부를 추려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현재 시점에서 쓴 글이 아닌, 길게는 15년도 더 전에 쓰인 글도 있어 현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도 더러 있지만, 이 경우 의도적으로 옛날 상태 그대로 유지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이 통역사로서 경험한 일들은 물론, 국내 통역 업계의 사정이나 외국어 공부에 대한 의견, 나아가 통번역과 인공지능의 관계까지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주로 드러나는 의견으로는 국내 영어 교육에 대한 비판이 있다. 통역사인 자신이 보기에는 사람들이 외국어에 가지는 인식이 잘못된 경우가 많고, 이런 잘못된 인식이 교육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선 그는 누군가가, 특히 대통령과 같은 사람이 5개 국어에 능숙하다는 등의 이야기는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전부 능통하게 할 수는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본인부터가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이후 프랑스로 유학을 가 불어 공부도 했던 사람인데, 영어 통역을 주로 하고 불어는 잘 사용하지 않다 보니 불어 실력이 녹슬었다고 한다. 실제로 여러 나라의 말을 익히는 사람이 더러 존재한다는 점을 보면 그의 주장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언어를 사용하는 데에는 사회적, 문화적 이해가 필수적이기에 모국어도 아닌 말을 단순히 말하는 것이면 몰라도 정말 '능숙하게' 사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거기에 더해 저자는 현재 영어가 국제 공용어로서 위치가 확실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각국의 정상이 통역사 없이 만나도 영어로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북유럽의 몇몇 나라는 국내 회의도 영어로 진행할 정도이니, 영어만 어느 정도 할 줄 알아도 큰 문제는 없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영어 교육만 착실하게 이루어져도 외국과의 교류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영어 교육이 실용적인 영어 실력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수능 영어를 풀라고 하면 어려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을 것인데, 이 정도로 국내 영어 교육은 불필요한 것을 많이 가르치기 때문이다. 문법과 단어 위주로만 배워 회화를 어려워하는 학생도 드물지 않다.

 여기에 저자가 제시하는, '영어를 잘 하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바로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이다. 박지성 선수나 김연아 선수 등 유명 스포츠 스타들의 경우만 보아도 무리 없이 영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저자는 이들이 영어를 잘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자신의 분야에서 크게 성공했다는 점에서 오는 자신감이라고 주장한다. 히딩크 감독 등 네덜란드 출신 감독들이 좋지 않은 영어 발음을 가졌음에도 아무도 트집 잡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감이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영어를 정확히 구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인데, 우리의 모국어는 한국어이므로 영어가 서투른 것은 당연한 일이라 그렇다. 문법이 잘못될 수도 있고, 발음이 어눌할 수도 있다. 다만 이를 듣는 상대방도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며, 그렇기에 눈치껏 우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영어로 말을 할 때 시제가 한두 개 잘못되거나 문법이 틀렸다고 해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오류가 있어도 웬만해서는 문맥상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고, 비영어권 사람이 그 정도의 실수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자신감이 중요한 것이다. 어차피 완벽한 영어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으니, 그나마 할 줄 아는 것이라도 확실하게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 저자는 영어 교육에 대한 비판과 자신감 외에도 정치인의 연설문이나 언론의 통번역에 대한 오해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책의 핵심인 마지막 부분은 제목과 같이 인공지능을 다루는 챕터이다.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을 상대로 승리하자 언론사나 통역기 업체들은 통번역계 또한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우위를 점하여 통역사가 사라질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에 대한 진지한 반박이 담겨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인공지능이 통번역사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고 한다. 단적인 예시로 번역기계와 번역가들의 번역 대결이 있었고, 거기에서 번역가들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렇게 기계가 번역에서 인간을 이길 수 없는 이유는 번역이 단순히 의미만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해당 언어가 사용되는 사회와 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심지어는 말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말버릇까지 세세히 고려해야 하는 것이 통번역이기 때문이다. 더 간단한 예시로 구글 번역이나 파파고를 생각해 보자. 인공지능이 정말로 인간 이상의 성능을 지닌다면 국제회의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식 석상은커녕 일상생활에서나 가끔 사용하는 정도고, 그마저도 오역이 매우 잦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번역기의 성능도 크게 개선되겠지만, 언어란 바둑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니만큼 한동안은 아마추어 번역가 수준에 머무를 것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