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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예술

「베를린영화제는 처음입니다만」- 장성란

by omicron2000 2021.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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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감상하는 영화와 베를린

 

베를린영화제는 처음입니다만

책으로 만나는 새로운 세상

book.naver.com

 흔히 3대 국제영화제라고 하면 이탈리아의 베니스 영화제, 프랑스의 칸 영화제, 그리고 독일의 베를린 영화제를 꼽는다. 그만큼 권위 있고 중요한 영화제라는 뜻인데, 영화 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하던 저자는 칸 영화제는 가본 적이 있어도 베를린은 그동안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저자가 베를린 영화제에 처음 간 것은 다니던 언론사를 그만두고 독립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게 된 이후라고 한다. 「베를린영화제는 처음입니다만」은 이때의 경험을 담아서 쓴 책이기에 영화에 대한 감상뿐만 아니라 베를린 영화제라는 축제 자체에 대한 감상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영화제에 출품된 영화만을 다룬다기보다는 영화제에서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하는, 일종의 기행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영화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은 물론, 영화를 웬만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베를린 영화제에 직접 참여한 경우는 드물 것인데, 저자는 식당이나 숙소까지 베를린에서 겪은 일들을 자세히 이야기하며 마치 독자가 영화제에 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보다는 영화인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영화제란 기본적으로 영화인들의 축제니 영화감독이나 배우는 물론, 저자와 같은 저널리스트, 영화 배급사 직원 등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참여하는데, 그러다 보니 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게 된 것이다. 우선 언론사에서 일하는 영화 전문 기자들은 아무리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원하는 것만 볼 수는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을 골라 하루에 2~3편씩 관람하고, 한국 시간에 맞춰 현지에서는 새벽에 이를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회사를 나간 다음 영화제에 간 저자는 이런 숙제가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신났다고 말한다. 물론 기자만 힘든 것도 아니다. 수입사 관계자들은 해외의 영화 세일즈사와 하루에만 10건이 넘는 미팅을 진행해 시간을 내기조차 어려울 정도라 한다. 이들은 모두 영화를 너무나도 좋아해 이런 직업을 가진 것일 텐데, 자신이 가장 바라던 영화 축제에 가고서도 이를 즐길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스포츠 팬이 응원하는 팀을 두고 다른 팀의 경기를 억지로 지켜보아야 하는 꼴이 아닌가.

 영화제를 다룬 책이니 영화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사실 영화 감상의 비중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다. 영화제 특성상 하루에 세 편가량의 작품을 관람하고, 그런 영화제가 일주일 정도 계속되니 언급되는 작품의 수만 해도 20편에 육박하며, 각각의 영화에 큰 분량을 할애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적으로 한두 개의 문단을 통해 장점과 아쉬운 점을 간단하게 분석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만 저자가 최고작이라고 평가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Isle of Dogs>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판타스틱 Mr. 폭스>라는 감독의 다른 영화를 언급하면서까지 길고 공들인 비평문을 보여준다. 권위 있는 영화제에 출품된 만큼 다른 영화도 모두 훌륭했다고는 하지만, 진정으로 좋아하는 영화라면 이렇게나 열정적으로 글이 쓰이는 모양이다. 이렇듯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전해진다. 스스로 영화 말고는 좋아하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베를린에서 만난 친절한 오스트리아 청년 빅터와 대화한 다음에도 저자는 온갖 영화와 그 등장인물들을 떠올렸는데, 정말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일상생활에서도 영화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가 있는 모양이다. 무언가에 열중한다는 것은 마치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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