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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예술

「이중섭의 사랑, 가족」- 최석태, 최혜경

by omicron2000 202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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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무한한 애정의 표현이오. ㅈㅜㅇㅅㅓㅂ

 

이중섭의 사랑, 가족

천재 화가 이중섭, 그림으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다『이중섭 사랑, 가족』은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 거장 이중섭의 평전이자 서간집이다. 1916년에 태어나 1956년까지 살았던 이중섭은 식민지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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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현대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은 유명한 은박지 그림 외에도 엽서나 편지의 그림, 유화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가 이렇게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름아닌 그의 가족으로, 이는 그의 작품에 나온 소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가 가장 많이 그린 대상은 알몸의 어린아이와 부부, 그리고 게였는데, 이는 모두 이중섭과 이남덕 부부, 그리고 두 아들 태성과 태현이 함께 살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게는 가족이 제주도에 살 때 잡아서 먹곤 했기에 제주도 생활을 가장 행복했던 때로 여기던 그에게는 특별한 소재였을 것이다. 아들이 두 명인데도 그의 그림에는 그보다 많은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어려서 죽어 이름조차 없었던 그의 첫째 아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에게 있어 뮤즈는 그의 가족이었으며, 그의 작품은 가족의 사랑으로 그려졌던 것이다.

 이중섭이 이남덕, 당시 이름 야마모토 마사코와 만난 것은 일제시대 도쿄의 학교였다. 그는 본래 지주 집안 사람이라 집이 제법 부유했기에 일본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마사코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둘의 사이가 어찌나 각별했던지 둘은 늘 별명으로 서로를 불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보통 성으로 사람을 부르기 때문에 조선에서 온 이씨 학생들을 구별하려다 턱이 긴 이중섭에게는 아고리('아고'는 턱이라는 뜻)라는 별명이 생겼고, 그는 이남덕의 발가락이 길다며 발가락 군이러고 불렀다. 길쭉한 발가락이 아스파라거스를 닮았다고 하여 아스파라거스 군이라는 별명도 썼는데, 이 세 별명은 결혼 후 편지를 주고받을 때에도 사용된다. 어쨌거나 이들은 졸업 후 결혼을 했고, 일본인과 조선인의 결합임에도 불구하고 양가 집안에서는 큰 반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이남덕의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도라 조선인이라고 차별하지도 않고, 신앙만 있다면 문제 없다고 했다니 이때부터 이들은 천생연분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도 잠시, 해방 후 북한에는 공산정권이 들어섰으며, 5년 뒤에는 전쟁마저 일어났다. 이중섭 가족은 전쟁을 피해 제주도로 갔는데, 이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남덕과 두 아들은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 이중섭만 한국 땅에 남아 외로이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의 창조성의 원천이 가족이라는 것은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그의 처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무엇보다 컸지만 가족과 함께할 수 없었기에 이 그리움을 예술로 승화해낸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단순히 스스로를 달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나 엽서에도 항상 그림을 그렸으며, 말년에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전시회도 열었다. 그에게 있어 그림이란 타지에 있는 가족이 자신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였고, 그는 성공한 남편이자 당당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그림으로 인정받고자 했다. 한 줄 한 줄에 사랑이 담겨 있는 그의 편지가 그 증거로, 편지지의 테두리에 빼곡히 그려진 그림에는 그림 속에서라도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드러나 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그림에 '예술은 무한한 애정의 표현'이라는 자신의 예술관을 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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