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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예술

「문명을 담은 팔레트」- 남궁산

by omicron2000 2020.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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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색을 만들고, 인간이 색을 입히다

 
문명을 담은 팔레트(창비청소년문고 23)
『문명을 담은 팔레트』은 책의 소장자를 나타내는 장서표 판화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고, 판화의 대중화에 힘써 온 판화가 남궁산이 색채의 기초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빨강부터 검정까지 9가지 색들이 인류와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지 역사, 예술, 사회, 종교, 과학을 넘나들며 살펴본다. 색과 관련한 다양한 옛사람들의 역사적 일화와 선명한 색을 손에 넣기 위한 인류의 악전고투를 흥미롭게 펼쳐 보이고, 사람이 색을 알아보는 원리 같은 색채의 기초 지식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친절한 서술과 70여 컷의 선명한 사진 자료가 어우러져 색채에 얽힌 풍성한 교양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저자
남궁산
출판
창비
출판일
2017.02.17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에는 색이 있다. 사실 색이 있기에 눈에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만큼 색은 사물을 인식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물이나 공간에 색을 칠하면 특정 이미지를 입힐 수도 있는데, 이 때 사용되는 색의 이미지는 자연물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하늘과 바다의 색이라 보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는 파란색, 풀과 나무를 연상해 편안함을 주는 초록색이 그 예시이다. 이 경우 어느 나라에서나 같은 자연물을 보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지역에 무관하게 거의 전 세계에서 비슷하게 사용된다. 하지만 자연물과 무관하게, 역사적이거나 문화적인 이유만으로 생기는 이미지도 존재한다. 축구의 옐로 카드를 보면 알 수 있듯 영국에서는 노란색을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오방색의 중앙으로 높이 본 것처럼, 이런 경우 지역마다 큰 차이가 생긴다. 「문명을 담은 팔레트」에서는 문명이라는 제목답게 인문학적인 요인으로 색이 가지는 이미지를 분석한다.

 색의 이미지에 의외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염료이다. 파란색을 예로 들자면, 먼 옛날에는 염료를 만들 때 주로 해당 색의 동물이나 식물에서 색소를 추출해 사용했지만, 자연적으로 파란색을 띠는 동식물이 드물었기 때문에 파란색의 경우 광물을 사용하였다. 가장 오래된 파란 염료는 보석의 일종인 청금석인데, 이 때문에 고대의 건축물에 파란 장식이 있으면 대단히 귀한 장소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로부터 수천 년 뒤 값싼 파란 염료가 등장하자 그제서야 예술작품에 파란색이 사용되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파란색보다 한 단계 더 나가서 있는 색이 보라색이다. 파란색의 경우 드물다고는 해도 쪽이나 인디고 등 염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라색을 띠는 경우는 정말로 드물다. 과거에는 보라색을 얻으려면 희귀한 바다 달팽이를 잡아서 특수한 처리를 해야 극소량이 나왔을 정도로 구하기 힘든 색이라 왕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귀족적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진다.

 이처럼 자연뿐만 아니라 기술적, 역사적인 요인도 색의 이미지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노란 염료에 중금속인 카드뮴이 포함되어 예술가들의 건강을 해쳤으나 이후 인체에 무해한 염료가 개발된 것처럼 색의 특성은 시대가 지나면서 달라지게 되어 있고, 그에 따라 자연히 색이 가지는 이미지도 달라지게 된다. 수십 년 전 미국에서만 해도 분홍색은 남자아이, 하늘색은 여자아이에게 어울리는 색이라 선전했으나 언젠가부터 반대가 되어 남자아이에게 하늘색, 여자아이에게 분홍색 옷을 입혀주었으며, 지금은 성별과 색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색의 이미지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수백 년 전 인물들의 그림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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